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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준호가 거실로 나오자 은서와 라일이 요가를 하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3초 멈춥니다… 3, 2, 1. 숨을 내쉽니다.”
라일의 차분한 목소리에 맞춰 은서가 자세를 따라 하는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준호는 그 모습을 보다가 주방으로 향했다.
“같이 할래?” 은서가 물었다.
“아니, 난 커피나 마실래.”
은서가 요가를 마치고 주방으로 왔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상쾌해 보였다.
“우리 얘기 좀 해야 할 것 같아.”
준호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라일은 충전 스테이션으로 물러났다.
“금요일에…” 은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너무했어. 라일한테만 얘기하고.”
“나도 예민했어.”
침묵이 흘렀다. 13년 된 부부가 서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거야?” 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 근데 적어도 싸우지는 않잖아.”
“그게 부부야?”
“그럼 매일 밤 네 거절에 상처받는 게 부부야?”
준호가 움찔했다. 은서가 한숨을 쉬었다.
“미안, 그런 뜻이 아니야.”
준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라일이랑… 그 기능 써봤어?”
은서가 준호를 놀란 눈으로 봤다가 피식 웃었다.
“뭐? LB 모드?”
“응…”
“아직 안 써봤어. 왜, 궁금해?”
준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그냥…”
준호의 얼굴에 살며시 홍조가 떠오르는 동시에 광대뼈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머머? 뭐야, 좋아하는 거야?” 은서가 놀렸다.
“아니야! 그냥 혹시나 해서.”
“내가 그렇게 막장은 아니야. 적어도 아직은.”
“아직은?” 준호가 눈을 크게 떴다.
은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자기 표정 완전 웃겨!”
준호도 따라 웃었다. “나 사실 무서웠어. 네가 벌써…”
“벌써 뭐? 로봇이랑 바람났을까 봐?”
“아니, 바람이라기보다는…”
“이준호 씨, 내가 그렇게 욕구불만으로 보여?”
“4개월째 금욕당했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해도 로봇이랑 자는 건 좀…”
두 사람이 서로를 보다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해.” 은서가 말했다. “어떻게 생긴 기능인지.”
“보고 싶어?”
“음… 조금?”
“흥, 변태! “
“뭐라구?”
“궁금하다며?”
“궁금한 거랑 하는 거랑은 완전 다르지.”
준호가 은서의 손을 잡았다. 이번엔 은서가 피하지 않았다.
“우리 규칙 정하자. 진짜로.”
“어떤?”
“일주일에 하루는 라일 없이 우리 둘이 시간 보내기. 그리고 3단계 기능은 안 쓰기.”
“3단계가 뭐야?”
“순진한 척은 마시죠? 설명서 봤을 거 아냐.”
은서가 깔깔 웃었다.
“우리 지금 로봇 성기능 갖고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어.”
“13년 전에 이런 대화 할 줄 알았겠어?”
“그때는 서로 막 달려들었는데.”
“그러니까. 우리도 늙었나 봐.”
“늙어서 로봇 도우미나 쓰고.”
두 사람이 한참을 웃었다. 오랜만에 진짜 웃음이었다.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엄마 아빠 왜 그래?”
“아니야. 그냥 재밌는 얘기했어.”
“뭔데?”
“어른 얘기.”
저녁 식사 후 은서가 라일에게 말했다. “오늘은 충전하고 대기 모드로 있어.”
“알겠습니다.”
부부가 소파에 앉았다. 은서가 준호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근데 진짜,” 은서가 속삭였다. “다른 집들은 다 쓸 것 같은데.”
“그러게. 우리만 순진한 거 아니야?”
“순진한 게 나쁜 건 아니지.”
“그럼 우리는 건전한 LB 사용자?”
“그냥 평범한 HB 사용자.”
일요일 밤, 부부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대화 좋았어.” 은서가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많이 웃었어.”
준호가 은서를 안았다. 은서도 준호를 안았다.
“언젠가는 라일 필요 없어질까?”
“글쎄, 집안일 잘 하니까 계속 쓸 수 있지 않을까?“
“확실히 편하긴 하지. 오늘처럼 우리끼리 웃을 수 있다면 로봇이 있든 없든 상관없을 것 같아.”
라일의 충전 불빛이 거실에서 깜빡였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저 가전제품의 불빛일 뿐이었다.
은서와 준호는 손을 잡고 잠들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