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로봇 LB-03 (1)

100-81

by 매그넘

퇴근하고 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있다. 침대 옆 구석, 의자에 앉혀둔 실리콘 리얼돌. 2년 전쯤 샀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밤, 술에 취한 채로 결제 버튼을 눌렀고, 며칠 후 거대한 박스가 도착했다.


오늘도 리얼돌은 거기 앉아 있다. 항상 같은 자세, 같은 표정. 당연하다. 움직일 리가 없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맥주 캔을 땄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켰는데, 알고리즘이 로보코어 신제품 발표 스트리밍을 추천했다. 라이브는 아니고 몇 시간 전 영상이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무대 조명이 어두워지고, CEO가 등장했다.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마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HB-7 시리즈. 가사 도우미 로봇. 요리, 청소, 빨래. 예상 범위 내의 기능들이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그다음 슬라이드에서 손이 멈췄다. LB-3. Life buddy라고 하지만 사실 love bot이라는 것을 다 안다. 화면에 뜬 렌더링 이미지는 인간과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피부 질감, 관절 가동 범위, 다섯 가지 표정 변화 알고리즘. CEO는 '정서적 동반자'라는 표현을 썼다. 가격은 HB-7의 세 배였지만, 패키지로 구매하면 20% 할인이란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구석의 인형을 봤다. 실리콘, 금속 골격, 움직이지 않는 관절, 표정 변화 없음, 체온 없음. 볼 거 있나? 계산은 간단했다.



해체 작업은 자정이 넘어서 시작했다. 검색해 보니 대형 폐기물로 분류된다. 그냥 버리면 과태료 대상. 하지만 분리해서 버리면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으로 나눌 수 있다. 실리콘 외피는 일반 쓰레기, 금속 골격은 고철류. 공구함에서 드라이버와 니퍼를 꺼냈다. 인형을 바닥에 눕히고 등 쪽 지퍼를 내렸다. 내부 구조가 드러났다. 2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다.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였다. 볼트 몇 개, 연결부 몇 군데. 30분이면 끝날 것 같았다.


어깨 관절을 분리하다가 손이 멈췄다. 손목 부분이었다. 실리콘 표면에 희미한 변색이 있었다. 오래 잡았던 흔적. 정확히 내 손 크기만큼. 언제 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여러 번, 오랜 시간에 걸쳐서.


2초쯤 그걸 바라봤다. 그리고 니퍼를 다시 집었다. 팔, 다리, 몸통, 머리. 분리된 부품들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다시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실리콘 부분은 종량제 봉투 3개로 나뉘었다. 금속 부분은 적당히 고철에 분리수거하면 된다.


새벽 2시, 봉지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쓰레기장은 1층에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 시간에 검은 봉지 세 개에 고철 봉투를 들고 있는 남자, 설명하기 좀 애매한 광경이다. 쓰레기장에 봉지들을 내려놓았다. 일반 종량제 봉투 세 개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나머지는 고철 재활용 자루에 쏟았다. 분리수거 규정을 지켰다는 사실에 묘한 자부심이 들었다. 시민의식은 사소한 것에서 드러난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내일은 목요일이다. 목요일 새벽에 쓰레기차가 온다. 과거는 압축되어 사라진다.


방에 돌아오니 구석이 비어 있었다. 의자만 남았다. 2년 동안 거기 앉아 있던 것이 사라지고 나니, 방이 조금 넓어 보였다.


방에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로보코어 공식몰에서 HB-7과 LB 모듈 패키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다음 검색창에 'LB 커스텀 외피'를 입력했다. 민간 업체들이 줄줄이 떴다. 3D 스캔 기반 맞춤 제작, 애니메이션 캐릭터 재현 전문. 한 업체의 포트폴리오를 열었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주문서를 작성했다. 참고 이미지 첨부, 체형 커스터마이징 옵션. 가슴과 엉덩이 사이즈를 기본보다 두 단계 올렸다. 제작 기간 2주, 가격 280만원. 결제 완료.


2주 후가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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