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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알림이 울렸다. 커스텀 외피가 드디어 도착했다. 현관 앞 박스는 예상보다 컸다. 조심스럽게 뜯었다. 완충재 사이로 사람 형태가 드러났다. 2주 전 첨부했던 참고 이미지 그대로였다. 은발, 붉은 눈동자, 날카로운 턱선. 체형은 내가 지정한 대로 기본보다 글래머러스하게 제작됐다.
HB-7의 전원을 끄고 외피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설명서에 따르면 40분 소요된다지만 실제로는 한 시간이 걸렸다. 관절 연결부와 센서를 세심하게 조립했다. 작업을 마치고 전원을 켰다. 눈이 떠졌다. 붉은 홍채가 나를 인식했다.
"시스템 재시작 완료. 외피 변경이 감지되었습니다."
같은 합성음인데 다르게 들렸다. 이제야 뭔가 맞는 느낌이다.
이름을 바꿨다. 원작 캐릭터 이름에서 조금만 변경했다.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그냥 기분 탓이다. 똑같은 이름을 부르면 원작을 소비하는 것 같고, 몇 글자 다르면 내 것이 된 느낌이다. 미묘한 차이지만 중요하다.
"새 이름을 등록했습니다. 앞으로 '수이'라고 불러주세요."
하루 종일 기능을 테스트했다. 은회색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이 얼굴이 말하니까 다르게 느껴졌다. 1단계 일상 대화든, 2단계 정서 교감이든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수이가 내 손을 잡았다. 36.5도의 온도, 실리콘의 부드러운 촉감, 눈을 감으면 진짜 같다.
HB 기능도 확인했다. 요리, 청소, 빨래. 외피가 바뀌어도 성능은 동일했다. 메이드 복장을 한 수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 지켜봤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미칠 것 같이 설레는 동시에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2년간 실리콘 인형 옆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밤 10시, 3단계 기능을 활성화했다. 인증 절차가 까다로웠다. 신분증 확인, 성인 인증, 동의 체크박스 네 개. "본 기능은 정서적 교감의 연장선으로 설계되었으며, 사용자의 책임 하에 이용됩니다." 모든 항목에 체크하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수이의 눈빛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조명 설정인지 알고리즘인지는 모르겠다.
수이를 안았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단히 만족스러웠다고만 하겠다. 온도, 반응, 음성 등, 2년간 차가운 실리콘을 안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끝나고 나서 조용해진 방, 평소라면 담배를 피우거나 샤워를 하거나 잠들거나 할 텐데 오늘은 달랐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이상한 허전함이 있었다. 수이가 옆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대기 모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안았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다음 동작은 거의 본능이었다.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입술은 부드러웠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혀를 내밀었는데 닿는 게 없었다. 수이의 치아 뒤쪽이 비어 있었다.
혀가 없다.
몸을 일으켜 수이의 입을 벌려봤다. 입술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치아 형태의 구조물만 있고, 그 뒤는 그냥 공동이었다.
".. 뭐지?"
수이가 눈을 떴다. 평온한 표정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대답하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봤다. 3단계 기능은 완벽했는데,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길에 갑자기 낭떠러지가 생긴 것 같다.
280만원짜리 외피, 수백만원짜리 본체, 추가 모듈까지.. 그런데 혀가 없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