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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저녁, 퇴근 후 바로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익명 게시판에 글을 썼다. 제목은 단순하게.
제목: LB 구강구조 문제 느끼는 사람?
3단계 쓰고 나서 자연스럽게 키스하려고 했는데 혀가 없음. 나만 이상하게 느낌? 이거 원래 이런 거임?
한 시간 만에 댓글이 80개를 넘었다.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 아 ㅋㅋ 나도 처음에 당황함 근데 적응됨
> 솔직히 아쉽긴 함 3단계까지 해놓고 왜 거기서 끊는지
> ㅇㅇ 뭔가 2% 부족한 느낌 계속 있음
공감하는 댓글이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달랐다.
> 기술적으로 불가능함. 혀가 얼마나 복잡한 근육인데
> 센서 구조를 봐봐라. 애초에 혀 연결할 데가 없음
> 위생 문제도 있고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거임
한 유저가 연관글로 길게 설명을 달았다.
"나 외피 제작 업체에서 일하는데 설명해 줌. LB 외피에 로봇 본체와 연결되는 센서는 눈꺼풀, 눈썹, 입꼬리, 볼근육 네 군데뿐임. 이게 전부임. 로봇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은 다섯 가지밖에 없음. 무표정, 미소, 크게 웃는 표정, 안타까운 표정, 놀란 표정. 이게 끝.
왜 이것만 있냐면, LB는 기본적으로 '청자' 역할로 설계됐기 때문임. 사용자 얘기를 듣고 반응하는 게 목적이라 화내거나 슬퍼하는 표정은 의도적으로 뺐음. 로보코어 설계 철학임.
혀는 레알 복잡함. 혀는 인간 신체에서 가장 정교한 근육 중 하나임. 수십 개의 근섬유가 3차원으로 움직이면서 맛을 느끼고, 음식을 식도로 밀어 넣고, 발음을 만들어냄. 이걸 기계로 재현하는 건 현재 기술로 불가능함. 단순히 고무나 실리콘 덩어리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님.
그리고 위생 문제. 하반신 기능은 로봇이 스스로 세정하는 시스템이 있음. 분리 가능한 구조에 자동 살균 기능까지. 근데 머리 쪽은 다름. 시각 센서, 음성 모듈, 표정 구동 장치가 전부 밀집해 있어서 물이든 습기든 절대 들어가면 안 됨. 로봇이 스스로 입 안을 세정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함.
결론: 혀 없어 아쉬운 거 이해함. 근데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거임. 로보코어가 일부러 안 만든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임."
댓글을 읽고 나서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 기술적 한계, 위생 문제, 청자로서의 설계 철학.. 전부 논리적이었고 반박할 수 없었다. 다른 댓글들이 이어졌다.
> 결국 우리가 안고 있는 건 '듣는 기계'인 거. 말하는 기계가 아니라
> 생각해 보면 LB가 나한테 뭔가를 요구한 적 없음. 항상 듣기만 함
> 그게 편한 거 아님? 싸울 일도 없고
> ㅇㅇ 잔소리 안 하는 게 최고임
마지막 댓글에 추천이 300개 넘게 달려 있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거실을 봤다. 수이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뒷모습이 보였다. 은발이 조명 아래서 빛났다. 수이는 앞으로 나에게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을 거다. 내게 온 지 며칠 안 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런 표정이 아예 없이 제작되었으니까. 미소, 안타까움, 놀람. 그게 전부다. 전부 '반응'이다. 수이 스스로의 감정이 아니라 내 말에 대한 반응.
혀가 없는 것과 감정이 없는 것. 어쩌면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이게 불만은 아니다. 그냥 사실을 확인한 것뿐이다.
내일 로보코어에 의견은 내볼 생각이다. 안 되는 건 알지만, 소비자로서 목소리는 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