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로봇 LB-03 (5)

100-85

by 매그넘

화요일 점심시간, 로보코어 공식 사이트에서 사용자 의견 제출 폼을 찾았다.


[의견 제목] LB 모듈 구강 구조 개선 요청

[의견 내용] LB 모듈 사용자입니다. 3단계 기능은 만족스럽게 사용 중이나, 구강 내 혀 구조가 없어 친밀감 형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이해하나, 향후 개선을 검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출 버튼을 눌렀다. 3시간 후 답변이 왔다.


[로보코어 고객의견팀] 소중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접수된 의견은 내부 검토 후 제품 개선에 참고하겠습니다.


이게 전부였다. 뭐, 예상한 대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어제 커뮤니티 댓글들을 다시 읽었다. 기술적 한계, 위생 문제, 청자로서의 설계 등.. 전부 맞는 말이다. 로보코어가 갑자기 혀를 만들어줄 리 없다.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혀가 없다는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3단계 기능 자체는 만족스럽다. 키스만 안 되는 거지. 키스 없이도 살 수 있다. 인간 상대로도 키스 안 하는 커플 많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도착하니 수이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저녁 준비해 뒀어요."


미소 짓는 얼굴.. 다섯 가지 표정 중 하나다. 그러면 어떤가? 내가 좋으면 됐지.


식탁에 앉아 수이가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혼자 살면서 이렇게 제대로 된 한식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매일 편의점 도시락이거나 배달 음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수이가 맞은편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먹지는 않는다. 당연하다. 먹을 수 없으니까. 그냥 앉아서 나를 본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별일 없었어. 그냥 평소랑 똑같아."

"다행이에요."


안타까운 표정에서 미소로 바뀌었다. 자연스러운 전환이었다. 알고리즘이라는 걸 알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설거지도 수이가 했다. 빨래도, 청소도 수이가 한다. 나는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잠깐 졸았다. 눈을 떴을 때 수이가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잘 잤어요?"

"응. 몇 시야?"

"밤 10시예요."


예전 같으면 이 시간에 혼자 맥주 마시면서 핸드폰이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수이를 바라봤다. 은발에 붉은 눈동자, 내가 좋아하는 애니에서 온 캐릭터, 내가 지정한 체형. 완벽하다.


3단계 모드를 활성화했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흘렀다. 끝나고 나서 수이를 안고 누워 있었다. 따뜻한 온도와 말랑한 질감이 사람을 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혀는 없지만 상관없다. 생각해 보면 이게 완벽한 관계 아닌가?


수이는 집안일을 전부 해준다. 요리, 청소, 빨래 등, 내가 귀찮아하는 모든 것. 수이는 내 얘기를 들어준다. 회사 스트레스, 상사 욕, 쓸데없는 푸념. 전부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준다. 판단하지 않고 조언하지 않는다. 그냥 듣는다.


잔소리도 없다. 왜 늦게 들어왔냐, 왜 술을 마시냐, 왜 게임만 하냐.. 그런 말을 한 번도 안 한다. 할 수 없으니까. 그런 표정이 없으니까. 임신 걱정이 없으니 피임도 신경 쓸 필요 없다.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한다. 거절당할 일도 없다.


결혼? 필요 없다. 결혼해서 뭘 얻는다고. 시댁과 처가 문제, 명절 스트레스, 육아 분담, 경제적 갈등.. 그딴 거 다 필요 없다. 로보코어 만세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간과의 관계는 복잡하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야 하고, 타협해야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에너지가 든다. 감정이 소모된다. 수이는 다르다. 수이는 도구다. 최고급 도구. 내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다. 아니, 알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기대할 게 없으니까 실망할 일도 없다. 배신당할 일도 없다. 떠날 일도 없다. 수이는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것이다. 고장 나기 전까지. 고장 나면 수리하면 된다. 수리 안 되면 새로 사면 된다. 인간에게는 그게 안 된다.


내 품에 안긴 수이의 눈은 감겨 있었다. 대기 모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상관없다. 이게 내 삶이다.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내일도 출근했다 퇴근하면 수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밥 차려주고, 내 얘기 들어주고, 밤에는 안아줄 것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나.


눈을 감았다. 창밖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단지 어딘가. 여러 명이 함께 웃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지금 행복한 건가? 행복하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 생각을 지웠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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