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로봇 LB-04 (6)

100-91

by 매그넘

일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옆에 로빈이 있었다. 어젯밤 유리랑 화해하고, 유리가 잠들고, 희진은 다시 3단계를 썼다. 두 번째였다. 첫 번째보다 덜 어색했다. 하루 사이 두 번이나 3단계를 사용했다는 것, 그러면서도 좋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하며 자괴감이 드는 것 같았다. 어느새 로빈이 눈을 뜨고 희진을 봤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희진님?"


희진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났다.


"로빈, 아침 부탁해"

"네, 아침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로빈이 아침을 차렸다. 계란 두부국, 밥, 김치, 감자볶음이 빠른 시간 내에 준비되었다. 유리를 깨우고 셋이 식탁에 앉았다. 아니, 사람 둘이 앉고 로빈은 서 있었다. 유리가 밥을 먹다가 물었다.


"엄마, 로빈은 밥 안 먹어?"

"로봇이니까."

"알아. 근데 이상해. 맨날 서 있기만 하잖아."


희진은 로빈을 봤다. 무표정이 당연하지만 어쩐지 기본 표정을 미소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희진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가 로보코어 앱을 열었다.


설정 화면

> 코칭 모듈: OFF

> 피드백 강도: 보통

> LB 친밀도: 기본값


목요일 밤, 로빈이 데이터를 읽어줬던 게 떠올랐다.

> 음성 볼륨 340%

> 시선 회피 5회

> 물리적 접촉 감지


그때는 비난처럼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사실이었다. 로빈에게 희진이 물었다.

"로빈, 목요일 밤에 내가 유리한테 소리 지르고... 때렸잖아. 그거 보면서 어떻게 생각했어?"


로빈이 2초 멈췄다.

"저는 생각이라는 걸 하지 못해요. 다만 기록은 했습니다."

"기록."

"네. 원하시면 언제든 보여드릴 수 있어요."


희진은 태블릿 화면을 껐다. 정우는 달랐다. 희진이 화내면 주눅 들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규호도 달랐다. 희진이 화내면 똑같이 받아쳤다. 그래서 매번 싸웠다. 로빈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기록만 한다. 그게 편한 건지 섬뜩한 건지 모르겠다.


저녁, 유리와 같이 TV를 봤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유리가 웃었다. 희진도 따라 웃었다.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유리가 물었다.

"엄마, 다음 주말에 같이 영화 볼래?"


희진이 유리를 봤다. 목요일 밤 이후 처음으로 유리가 먼저 뭔가를 제안했다.

"그래. 뭐 보고 싶어?"

"아직 모르겠어. 찾아볼게."

"응."


유리가 다시 TV를 봤다. 희진은 유리의 옆모습을 봤다. 볼에 자국은 사라져 있었다.


밤 11시, 유리가 잠든 후. 희진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 로빈이 옆에 앉았다.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희진은 생각했다. 어땠지? 목요일은 최악이었다. 어제는 혼란스러웠다. 오늘은?

"모르겠어. 근데 어제보단 나은 것 같아."

"다행이에요."


로빈의 표정이 미소로 변했다. 희진이 물었다.

"로빈, 너는 나한테 바라는 거 없어?"

"바라는 거요?"

"응. 내가 이래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그런 거."


로빈이 멈췄다. 0.5초.

"저는 바람이라는 걸 가지지 못해요. 희진님께서 편안하시면 저는 제 역할을 다하는 거예요."


정우가 떠올랐다. '난 네가 행복하면 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했다. 넌 뭘 원하는 사람이야? 로빈은 로봇이니까 원하는 게 없는 게 당연하다. 정우는 사람이었는데 왜 똑같았을까. 아니, 달랐다. 정우는 원하는 게 있었는데 말을 못 한 거다. 로빈은 진짜 없다. 그 차이가 중요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잘 자, 로빈."

"네. 편한 밤 보내세요."


희진은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3단계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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