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한 인간의 스토리 수집 #1 특정 종교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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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맥락 속 단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듣기 좋지 않다. 똑똑하고 현명하며 사리분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니까.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난 낯선 사람들의 말을 쉽게 듣고 믿는 사람이었다
처음은 대학교 시절, 춤 동아리에서였다. 당시 대학교에 다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특정 기업에서 복지차원의 클래스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춤 초보자들을 위한 2달짜리 강의였다. 나는 굉장히 몸치에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던 사람이라 춤 실력이 단 0.01도 늘지 않았었다. 나랑 같이 시작한 초보자 친구 A는 한 달 정도 지나자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나랑 같이 시작했는데, 그녀는 꽤 실력이 는 것이다. 나는 부럽기도 했고 그 비결이 궁금해서 친구 A에게 물어봤다. 그는 '춤을 잘 추고 싶어서 매일 거울에서 조금씩 연습한다' 라며 내게 연습하라는 말을 건네줬다. (사실 그 말을 들어도 난 거울에 있는 몸치 000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2달 수업을 겨우 끝내고 도망치듯 클래스를 나왔다.)
그 이후로 그 친구와 연락을 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이렇게 된 이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들어보지 않겠냐며 내게 이야기를 했다. 어떤 좋은 글귀가 적힌 이미지도 가끔씩 보내줬다. '너 자신 안에 신성이 있다' 라느니 하는 말들이 가득했다. 유명한 문장들과 묘하게 달랐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다만, 딱 하나, 맨 마지막에 그 말을 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게 좀 특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며 신도림 역 안 카페로 나를 불렀다. 당시 인생 이야기를 하는 것에 심취해 있던 터라, 인생 고민과 삶에 대한 애환을 나눌 겸 나갔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다니던 대학 (A는 인서울 중 상위권 대학 경영학과 출신이었다)을 퇴학하겠다고 했다.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이 학교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있는 00 대학교를 간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자율전공학과가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의아했다. 그 좋은 학교, 학과를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정 안되면 전과를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 있다고 했던 00 학교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선택의 이유를 묻자, 친구 A는 자기 가정사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는데, 외할머니가 믿고 있던 어떤 종교에 대해 엄마가 믿고 나서 엄마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불교였는데, 그런 그들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지만 동참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엄마의 종교를 아버지에게 권할 때, 혹은 그 종교의 방식대로 자식을 키우려고 할 때 사이가 계속 틀어졌다고 했다. 결국 엄마는 아버지 전도를 성공했고, 온 집안사람이 그 종교를 같이 믿고 있다고 말했다. 동생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아예 그 학교로 지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데 이루지 못하면, 시각화를 해야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외쳐야 한다고 말이다. 자기는 일본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시각화를 했다나 뭐라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당시에 하필 배우던 것들이 기호학이니 서양철학이니, 변증법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회의론에도 한창 빠져 인생의 많은 것들을 회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글귀들이 하나의 '기호'이며 많은 것들은 사실 나의 의식을 지배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우린 끊임없이 그걸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가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다른 이야기를 해댔다. A의 종교 이야기가 약 1시간 정도 지날 무렵 끝이 났다. 결국 그 친구는 퇴학 후 일본 대학을 갈 것이고,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건 참 아쉽겠다는 말을 하며 대화를 끝냈다.
집에 돌아와 그 종교에 대해 주변에 물어보고, 검색을 해본 다음에야 내가 신도림에서 들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A가 끊임없이 춤 연습을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자기자신이 아닌 '그 종교'때문이라고 말하는 모습과, 신도림에서 만난 목적이 따로있었다는걸 몰랐던 내 모습이 마구 뒤섞인 씁쓸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