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한 인간의 스토리 수집 #2 피부상담사 in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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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입사 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까, 일은 얼추 알겠지만 일 외의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는 푸석하고 피부엔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가득했다. 그날따라 눈에 너무 많이 밟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다, 내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함 아니겠냐고 거울을 보고 외쳤다. 그날은 퇴근하고 나서 올리브영을 갈 계획까지 세웠었다. 헤어오일 하나와, 얼굴에 좋다는 팩을 몇 개 사서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강남역 지하상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주변 여러 건물들의 입구와 출구가 연결될 정도로 거대한 그곳은 하나의 큰 던전 같았다. 2호선 라인 쪽은 옷과 핸드폰 액세서리를 팔고, 에뛰드와 네이처리퍼블릭 같은 화장품 브랜드와 핸드폰 매대가 가득한 곳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 분당선 쪽으로 가면 신기한 맛집과 밥집, 짬뽕집까지 있던 기억이 난다. 꽤 상권이 발달한 곳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휘적휘적 걸으며 화장품들을 조금 살폈다. 어차피 올리브영을 가려고 하지만 혹시, 뭐 좋은 건 팔지 않나 싶어서 조금 걷다 보니 어떤 한 사람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머 아가씨 잠깐만요"

난 멈춰 섰다. 이때 무시를 하고 갔었으면 아마, 이런 일은 없었겠지.


"아가씨 얼굴은 귀여운데, 피부에 뭐가 많이 났네. 여드름이에요?"

여드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물려준 여러 유산 중 하나, 성인 여드름을 그녀는 금세 알아챈 것이다. 그 사람이 내 여드름을 지적할 때 나도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뽀얀 피부, 방금 에센스를 바른듯한 광채 나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이는 나보다 2배 많아 보였지만, 그녀의 피부는 아마 내 피부보다 2배 어렸을 거다.


"이 여드름, 쉽게 안 없어졌죠. 지금까지 꽤 고생했을 텐데. 혹시 이런 피부 트러블에 대해 관리받아볼 생각 없어요? "

있지, 당연 있었다. 오늘 그러려고 올리브영을 찾아가던 차였는데, 혹시 더 좋은 상품을 소개해주려나 싶어 냉큼 대답했다.

"네 그럼요. 관리받고 싶어요" 그러자, 그녀는 웃음을 띠며 이 주변에 자기네 센터가 있으니 앉아서 한번 상담 제대로 받아보자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강남역 1번 출구를 오르고 몇 걸음 가니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 동안 그녀는 내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 이름이 뭐예요? 나이는? 혹시 이 주변에서 일해요? 일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데, 아니 앳되고 귀엽게 생겼잖아. 피부만 괜찮으면 정말 완벽할 것 같아~"

과하지도, 오디오도 비는 것 하나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는 내게 말을 걸며 나의 상황을 파악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며 어느새 그 공간에 도착했다. 건물은 조금 이상하게 생겼었다.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거의 사용의 흔적이 없는 그런 건물이었다.


00 에스테틱, 안으로 들어가니 긴 복도가 있었고 복도 옆 상담실들이 개미굴처럼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다. 그녀는 맨 끝 방이었고, 그녀의 방 앞은 실제 시술실이었다. 몇 개의 베드가 있었고, 사람 발바닥 몇 개가 보였다. 시술을 받는 건지 아닌지 굉장히 애매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피부 관리를 할 때 일반적으로 조금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둔다면, 여긴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아주 밝은 형광등, 그리고 배드 간 칸막이가 없이 가까운 거리감이 묘한 이질감을 자아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내게 슬슬 말을 놓기 시작했다.

"자기, 얼굴 다시 한번 보자" 그녀는 그렇게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냥 눈으로. 그리고 나선 자기도 똑같았다며 이야기를 했다. 그녀도 나처럼 여드름이 가득했는데 꾸준한 관리를 받고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내 나이랑 엇비슷한 자기 아들도 있다고 했다. 아들이 진짜 여드름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것도 여기 관리 덕분에 괜찮아졌다고, 그래서 아들과도 사이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게 승부수를 띄웠다.

"내 딸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이렇게 계속 피부 안 좋게 살 순 없잖아. 이번에 한번 잘 관리해 봐요."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체크체크를 했다. 회당 x만원이고, 한 번에 (할부로) XXX만원을 끊으면 회수를 늘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신용카드가 없었다. 체크카드엔 그만한 돈도 없었다.

"저 돈이 없는데요. 신용카드도 없어요." 그랬더니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몇 번을 내게 되물었다. 아니 신용카드가, 없다고요? 할부가 되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까지 안 만들고 뭐 했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신용카드예요~라고 하며 반말과 존댓말을 뒤섞어 가며 이야기를 했다.


결국 나는 1회권을 끊겠다고 했다. 체크카드로 아마 3만 원 정도 긁었을 것이다. 카카오 어피치 카드가 쓱, 하고 그들의 카드머신을 훑었다. 그리고 나선 내게 돌아왔다.


"예약 잡아줄게요. 2일 뒤 다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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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가서 이 이야기를 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팀장님이 중얼거렸다.

"그런 권유 저런 권유 많다고는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끌려가서 결제한 사람이 내 옆에 앉아있다니."

'옆 시술실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았다'라고 했지만 팀장님은 어이없다는 듯 "그거 00님이 오니까 다 같이 누워서 시술받는 척하는 거 아니야? 아님 인형 아니야? 말이 안 되는데" 라며 코웃음을 쳤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다른 팀원들, 옆 팀 팀장님들도 하나같이 환불 이야기를 했다. 또 누군가는 '잃은 셈 치라고' 말했다. 그때서야 이게 무언가 많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날 퇴근 후, 다시 1번 출구를 통과해선 그 건물을 찾아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열었다 한산했다. 그리고 그 전날 본 그녀가 카운터 부근에 서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다시 내밀며 환불을 해달라고 했다. 온 김에 피부 관리를 받고 가라는 그녀의 제안을 애써 거절하며 환불을 받았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멍청했지만, 되돌려 받은 게 어딘가 싶어 마음을 쓸어내리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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