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개떡 같은 요청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AGI의 고성능 덕분에 사람들의 뇌는 점점 외관에 치우치기 시작했다. 내밀하고 깊숙하고 중요한 것들을 인간이 이해하는 데 로봇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 스스로는 그 시간을 포기했다. 대신 AI와 역할 분담을 하기로 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더 잘하는 것을 하는 존재>가 그 일을 도맡아서 하기로 한 것이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인간이 직접 빨래를 하며 시간을 잡아먹었고, 청소기와 식기세척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그 모든 일들이 인간의 일이지 않았나.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와 타인을 설득했다. 앞으로 '골치 아픈 반복작업들'은 AGI에게 맡기고, 창의적인 일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하는 광고 메시지에도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인간의 뇌들은 기계가 '패턴 인식' 하는 속도 보다 더 빨리 현실에 적응했다. 어려운 일이나 꼬인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챗봇들에게 맡겼다. 그렇게 들인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더 많이 자기가 <과거에 소비하던 것>들을 더 많이 소비했다. 요리 1시간, 설거지 30분이 걸리던 시간이, 온전히 요리 1.5시간 설거지 0시간으로 바뀌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또는 요리 1시간과 함께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기의 인생을 더 빛나게 꾸며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불필요하게 OTT서비스를 많이 본다고 타박했지만 꼭 그런 모습만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소비하던 것을 더 많이 소비" 하는 것뿐이었다. 그 모양새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었다. 창의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 역시 그들의 '시간과 정신 에너지를 소비' 하는 것이었다. 점점 사람들은 자기의 기호를 명확하게 찾아갔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일은 적었다. 고객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존재들은 물건에 대한 설명을 맡겨버렸다. 기계가 대신한 콘텐츠에서는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AGI가 만들어낸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쉽게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제거' 해버렸다. 웬만한 메일과 대본, 스크립트 중에 AI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 회사의 언어모델'과 결이 맞지 않는 소비자들은 더 빠르게 떠나갔다. 각 회사의 언어모델의 목적은 하나였다. '사람들에게 자사 언어모델의 특징을 주입' 시키고 '싫어하지 않을 순간'을 캐치하기.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며 스스로를 긍정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인생 전반에 걸쳐 고민했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 준 덕에 더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다고 스스로 되뇌였다. 실제로 인간들은 더 괜찮은 것,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들에 대한 욕구와 결핍이 점점 더 강해졌다. 언어모델을 단축키와 연결시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야기든 내게 꼭 할 수 있다는 응원을 줘>라는 요청을 단축키에 심어둔 사용자는, 언어모델 덕분에 스스로에 대한 자아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그만큼 사회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응원을 해주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누군가와 손절을 빠르게 해 보고 테스트하는 것에 능했다.
이런 사람들의 선택 방식은 물건 형태에도 영향을 끼쳤다. 더 많은 개별 포장들이 늘어났다. 한두 번의 맛을 본 다음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각 과자들 앞에 시식할 수 있는 작은 주머니들이 달려있는 포장도 있었다. 프리메이드 소스도 그랬다. 무엇이든지 조금 해보고, 빠르게 결정 내리는 사람들의 패턴, 그건 결국 아무도 1 cycle을 돌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