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은 AI에게 맡기자(!!)
AGI가 일상으로 파고들어 '나만의 개인비서' 역할을 한다면 인간이 무엇에 집중하게 될까. 누군가는 창의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반복적인 것을 말했다. 나도 그렇게 앵무새처럼 읊어댔다.
최근 읽은 책,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중 하나의 질문을 보고 깨달았다. 인간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게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과 꽤나 거리를 갖고 있었고 그 둘 간격을 적절히 조절하는 작가들이 '시장에서 먹히는' 작가들이었다. 아마 이 부분을 대신해주지 않을까.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로 바꾸어줘,라는 것은 정말로 기계가 더 잘할지 모른다. 그것에 들어간 인풋 데이터와, 그것을 이루는 파라미터 개수는 인간의 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쓴다. 그리고 남들이 읽고자 하는 글로 고쳐내지 않는 대신 기계에게 부탁한다. 그게 일종의 분업 같은 것이다. 스스로 '남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잘하는 존재에게 맡기기로 한 인간은 점점 더 자기 자신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타인을 인식하고 그들의 관점을 배운 기계들이 그 몫을 대신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메일을 작성할 때 머릿속에 몇몇 키워드만 떠올린다.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글보다 영어는 더 심하다. 나는 한글로 말했지만, 영어로 알아듣는 저들을 위해 번역을 해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역할을 대신해주는 존재들이 이미 많이 나와있다. '타인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대신 써주는 서비스를 활용하면 간단하게 문제가 끝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아주 작고 한정적이지만, 법률적인 논의를 해야 하는 수준의 높은 글을 글을 써야 할 때도 있다. 변호사들이 준비하는 문서들도 그럴 것이다. 공식화되는 문서들, 더 많은 대중을 고려해야 하는 글들은 점점 인간이 아니라 기계의 파라미터를 거치게 될 것이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라는 표현이 '마지막 레이어에서 피어나는 글자'라고 바뀔 순간도 올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만 써도 부족한 게 인간의 삶이란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에 대해 이상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인간이다. 그럴 수 있는 상황도 많지 않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부여받는 역할들이 자기 삶의 글 쓸 시간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읽기 좋은 글'을 써야 하는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과거에서 졸업하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이젠 그런 글을 생성하는 건 기계에게 맡기고, '유한한 삶, 인간 스스로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시간을 벌어준 존재 덕에 더 많은 자아를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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