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종기 작은 공간에 모여 앉아있던 수험생 시절, 뒷자리에 앉은 친구의 텀블러를 그렇게도 팔꿈치로 건드렸다. 그 친구의 텀블러를 피해 팔을 여러 각도로 움직였지만, 결국 내 팔이 닿을만한 거리에 놓여있던 컵은 종종 쓰러졌다. 물이 없었으면 다행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두루마리 휴지도 항상 놓여있었다. 언제든 그 친구의 책상이 물바다가 될 때 빨리 해결하려고 말이다. 내가 조심성이 없다고만 생각하던 수험생활을 끝내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어느 누구의 텀블러를 쓰러뜨리지 않았다.
공간이었다. 내 팔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 내 팔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준의 공간이 필요했다.
티라노 사우르스만큼의 짧은 손짓으로 그 공간을 살아야 했다. 뒷사람에게 OMR 카드를 넘겨줄 때도 팔꿈치가 아닌 손목의 스냅만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했다. 휙 하니 돌아보지 않고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좁은 공간에서 살기 위한 몸짓으로 적응해야 했다.
나만의 방에서 첫 세탁을 하고 빨래를 건조대애 잔뜩 널어두었다. 청소를 하다 뒤로 잠깐 움직였는데, 건조대가 흔들리는 기색도 없이 풀썩하고 쓰러졌다. 얇은 종이 한 장이 바람이 휘날려 쓰러지듯, 소리도 크게 나지 않았다. 냉큼 다시 세워두었다. 건조대의 공간을 인식해야 했다. 그리고 얇은 건조대의 무게도 잊지 말아야 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주제에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지는 물건, 일주일에 몇 번 나의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이 물건에 적응이 필요했다.
혹시나 건조대의 길이를 줄일 수 있을까 싶어, 건조대 팔 한쪽을 접었다. 왼쪽 팔꿈치는 접고 오른쪽 팔만 길게 뻗은 모양, 분명 균형이 맞지 않을게 뻔했다. 빨래가 많았다면 오른쪽으로 또 한 번 기울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양팔을 다 접어보니, 너무 작은 사이즈에 빨래를 걸어야 했다. 빨랫대가 겹쳐서 제대로 널지도 못한다. 결국 긴 두 팔을 모두 뻗어놓고 내가 피해야 할 수밖에 없다. 뒷걸음질을 치다가도 종종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신나게 청소를 하다 오히려 일을 더 만드는 꼴이 날 수 있으니 조심스레 움직여야 한다. 건조대가 펴져 있을 때는 청소를 하지 않는 방법도 있겠다. 이래저래 빨래 건조대가 가장 상전이다. 개복치라는 말이 떠오른다. 살짝 건드려도 툭 하고 부풀어 오르는 존재, 빨래 건조대가 딱 그 꼴이다.
오랫동안 싱글 사이즈의 매트리스를 쓰다 보니, 슈퍼 싱글이나 퀸 사이즈의 매트리스도 쓰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넓은 이 공간에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세로 2000에 가로가 무려 1500이나 하는 침대에 누워있으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마구 굴러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침대에 잘 누워있지 않지만, 넓은 침대엔 계속 눕고 싶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트리스를 골랐다. 그다음 방 사이즈를 다시 쟀다. 세상에, 1500 x 2000이라는 공간을 매트리스가 다 차지하면 발을 디딜 틈도 없을 것 같았다. 건조대도 널어두어야 하고, 밥솥도 어딘가 잘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큰 매트리스를 사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선택이었다. 나의 몸이 왼쪽 오른쪽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갖추려면 다른 공간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불가능했다. 건조대가 휙휙 쓰러지는 이곳에서 퀸은 무리였다. ‘작은 공간에 적응’이라는 이름의 합리화를 잠깐 하고 400 더 작은 슈퍼싱글을 선택했다. 꼭 침대에서 굴러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정 구르고 싶으면 세로로 누워 구르지 뭐. 잠깐 펼쳤다 접는 건조대와 달리, 매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매트리스는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타협을 해야 한다. 항상 존재하고 있는 익숙한 무언가, 익숙하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려버리는 슬픈 누구처럼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남은 가구들을 가지고 테트리스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