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싸는 게 호락호락할 줄 알았지?

by 크게슬기롭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 작년에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몸에 익혀 두었던’ 음식 량만큼을 먹고 있다. 몸무게는 돌아왔지만 식습관만큼은 되돌려 놓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만큼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 밥 100g, 닭가슴살 1 덩이, 야채 150g 이 내게 주는 장점이 단점보다 컸다.


도시락을 싸는 건 어렵지 않았다. 냉동고에 얼려져 있는 밥 한 덩이와 닭가슴살을 꺼내고, 퇴근하며 들렀던 슈퍼에서 산 야채를 썰어 150g만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도마를 슬쩍 꺼내서 칼로 몇 번 썰어 넣으면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전자레인지가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을 5분 안에 끝낼 수 있었다.


5분 만에 밥 준비를 하고 5분 동안 밥을 먹는 행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밥을 꺼내서 먹는 과정이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저 10분의 자유로움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되었다.


밥과 야채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다시 사야 했다.

냉동고에 얼린 밥이 없다.

퇴근하면서 쉽게 들러볼 만한 슈퍼가 없다

야채를 썰 수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다

슬쩍 꺼낼 가벼운 도마도 없고, 그 가벼운 도마를 올려둘 주방 선반도 없다.

칼을 새로 사야 했다.

도마와 도시락 그릇을 나란히 놓을만한 주방 선반에 여유 공간도 없다.

전자레인지가 없어 프라이팬에 돌려먹어야 했다.


저울과 칼, 전자레인지를 샀다. 도마는 두껍고 튼튼한 것으로 집에서 가져왔는데 그 위에 ‘일회용 종이 도마’를 올려두고 쓰고 있다. 도마는 받침대 역할을 할 뿐이고, 매번 종이 도마를 꺼내 무언가를 자르는 것이 조금씩 더 시간을 쓰게 한다.


냉동고에 밥은 내가 만들어 얼려야 했다. 밥솥도 구매했다. 쌀을 세 번 씻고 넣고 밥이 완성되었다는 알람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밥이 다 되자 한 수저 먹어보았다. (정말 맛있었다. 바로 한 밥을 먹다니! 계란밥도 먹고 싶어 졌었다) 그리고 남은 밥들을 모아 100g씩 비닐봉지에 담아 얼려두었다.


출 퇴근길에 들려볼 만한 슈퍼를 하나 찾았다. 집에서 약간 거리가 있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그 슈퍼에 가보니 살만한 것들이 마땅치 않았다. 많은 양의 양파를, 파프리카를 둘 만한 공간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것들을 사서 돈을 좀 절약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스몰 웨딩이 돈이 더 많이 들 듯, 작은 공간에서 사는 것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야채를 썰 공간이 마땅치 않아 주말에 날 잡고 썰었다. 일주일 식량을 위해 큰 통에 가득 담길정도로 파프리카, 당근을 썰었다. 애호박과 양파도 썰어 볶아 넣었다. 볶인 것들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 또한 공간을 필요로 했다. 공간, 공간…!


개수대 주변에 도마를 걸쳐두었다. 다행히 두꺼운 도마라 잘 버텨주었다. 그 위에서 신이 나게 야채를 썰었다. 새로 산 칼이라 그런지 쉽게 잘리는 느낌도 들었다. 다만 도마 주변에 도시락 통을 여러 개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들을 함께 사용했다. 쉽지는 않았다. 왔다 갔다 몇 번을 반복했다. 돌아다니는 동안 빨래 건조대도 한 번 쓰러뜨렸다.


전자레인지가 없어 프라이팬에 돌려 먹는 것이 필요했다. 프라이팬에 불을 붙이고 환풍구를 열고 도시락을 덥혔다. 전자레인지보다는 빠르지만 조금 지켜보아야 했다. 밥을 먹으려는 동안 환풍구 소리도 괜히 더 크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사실이겠지, 부모님 집은 넓은데 반해 나의 집은 좁으니까 더 크게 들리는 게 분명할 것이다.

이제는 이런 프로세스에 익숙해질 차례다. 남들이 왜 간단하게 챙겨 먹는지 점점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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