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시작하는 사람의 페르소나를 하나씩 흉내 내고 있다.
1. 새벽 장나라
동향집을 구한 내겐 어떤 알람도 필요 없다. 해가 떠서 그대로 나의 집을 가득 비춰주면 나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눈을 뜨면 5시다. ‘햇살은 나의 창을 밝게 비추고 반쯤 눈을 떴을 때’ 일어나는 장나라의 sweet dream 노래 가사처럼 일어나게 되는데, 알람보다 빠른 햇살이 나의 창을 비출 때, 반쯤 눈을 뜨고 생각한다. ‘아 더 잘까? 인간 적정 수면시간 8시간도 못 채웠는데 이러다가 회사에서 머리 안 돌아가는 거 아닐까? 걱정되네.’ 눈을 다시 붙인다. 저장해둔 알람이 5시 30분에 울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알람을 끄기 위해서 눈을 다시 뜬다. ‘이럴 거면 그냥 일어나버리자’라는 마음으로 또 침대를 박차고 나온다.
원하는 만큼 잠에 들지 못하는 나, 이렇게 상황에 무력하게(?) 컨트롤당하는 사람이었나? 하고 스스로에게 코웃음을 한번 치고 하루를 시작한다.
2. 오늘은 내가 요리사
평소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요리를 하겠다고 레시피를 괜히 찾아보고 있다. 이거 조금, 저거 조금 사서 저렇게 끓이면 배추찜이 된다, 라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재료를 살펴본다. 알배추와 냉동 삼겹살, 칼국수 면과 치킨 스톡만 있으면 뚝딱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레시피가 날 꾀어낸다. 얼른 동네 마트에서 잔뜩 사와 냉장고에 쟁여! 레시피를 보며 시뮬레이션을 해! 그걸 먹고 좋아하는 스스로를 상상해! 그걸 잘한다고 하면서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마다 배추찜을 해! … 이런 생각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참 잘한다. 배추찜을 만들어놓고 에어컨을 틀어놓은 내 방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뜨끈한 물과 시원한 바람이 멋진 조합을 이루겠지. 그렇게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수다 좀 떨다 술에 취해 잠들어버리는 것까지, 너무나 행복한 주말이 아닐까 싶다. ‘금요일 밤, 오늘은 내가 배추찜 요리사!’를 외치고 다녀봐야겠다.
3. 갬성 조명 기사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불은 ‘공부할 때 켜고 잘 때 끄는’ 것이 다였다. 그 이후로 몇 가지 스탠드 조명을 사 와서 방을 밝힌 적은 있지만, 죄다 하얀색 조명이었다. 학습된 이성이 지배하는 공간엔 하얀색 불빛 말고는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었다. 책을 읽어야 할 때조차 ‘눈 나빠진다 불 켜고 읽어라’라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 나의 감성에 집중한다는 것은 상당히 낯부끄러운 짓이었다.
‘갬성’ 이 가득한 파란색과 노란색이 그라데이션으로 나오는 조명은, 이 공간에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게 ‘조명 바꾸기’여서 더 그랬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가만히 멍 때릴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아무런 의식 없이 낯설고 신기한 것에 대해 오롯이 놀라고 감탄할 수 있는 이 공간, 여기에 그라데이션 조명을 켜보니 내 감성에 대한 감독, 작가, 편집자가 바로 나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조명을 켠다.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 Jessie Ware의 Say You Love Me를 듣는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 노래가 끝나기까지 계속 조명과 노래를 감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