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와 설탕 2

by 크게슬기롭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인상 깊은 카페’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아현동 카페도 ‘설탕’ 때문이었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키고 그 준비과정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카페 알바를 했던 게 뭐라고, 어떻게 가루를 모아 탬핑을 하고 샷을 내리는지 자꾸 눈길이 갔다. 카페 주인은 에스프레소를 다 내리고 나서 찬 물과 설탕 봉지, 그리고 에스프레소가 담긴 커피잔과 수저를 함께 주었다.


설탕 봉지, 그는 입구를 잘 뜯어 에스프레소에 넣을 수 있게 그 봉지를 탁탁 털었다. 그리고 커피잔 옆에 비스듬히 세워두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신기하네, 싶어 가만히 설탕 봉지를 바라보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마시면서 계속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설탕 봉지를 그렇게 정리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아,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먹나요?

그 질문을 하고 나자마자 ‘티스푼으로 설탕을 퍼서 자신의 에스프레소에 넣고 휘휘 돌려 마시던’ 영화 속 수많은 주인공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민망했다. 주인도 그냥 그렇다, 한번 넣어 드셔라라고 가볍게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주인은 내 생각과 조금 달랐다.


커피야 말로 기호식품이고 자신이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셔야 한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단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달게, 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마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주변 어떤 사람이 와서 ‘에스프레소는 이렇게 마셔야 해~’라고 한다면 절대 귓등으로도 듣지 말라. 그냥 스스로가 먹고 싶은 만큼 넣고 휘휘 저어 마시면 되는 것일 뿐이다.


라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다시 내려주겠다고 했다. 원하는 대로 설탕을 넣어가며 다시 즐겨보라는 이야기였다. 설탕을 위한 두 번째 에스프레소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맛을 느끼기 위해 마련된 기회였다. 한 모금은 그대로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고, 그다음엔 한 스푼을 넣어 간간하게 마셨다. 마지막 한 모금은 설탕을 가득 부어 설탕물(?)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 몇 방울 되지 않는 에스프레소에서도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설탕과 주인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사실 설탕 하나도 어떻게 넣어 먹어야 할지 몰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망가진 스스로를 자각했던 것도 그때였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취향을 잃어버렸다. 아무런 생각을 하고 살지 않으려 했다. 맛에서 오는 모든 즐거움을 무시하며 살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에스프레소와 설탕, 아주 적은 용량의 두 가지가 내 머리를 흔든 이후로, 여러 커피를 많이 찾아 마시고 있다. 에스프레소를 파는 카페에 들어가면 꼭 한 잔씩 주문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집만큼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아마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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