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잠들러 오는 길

by 크게슬기롭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가만히 생각한다.


내리막길을 한참 걸어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렇게 몇 걸음 걸으면 ‘가고 싶은 분위기가 잔뜩 풍기는’ 와인바 하나와 오마카세 집이 있다. 여덟 걸음 정도 걸으면 그 두 가게를 지나칠 수 있는데, 마치 장난감 가게를 지나가며 구경하는 아이처럼 시선을 떼지 못하고 쳐다본다. 여덟 걸음 사이에 ‘가고 싶다 재미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항상 지나친다. 그렇게 오른쪽을 잔뜩 쳐다보며 앞으로 걸으면 왼쪽 저 멀리 마트가 하나 보인다. 큰 대로변 사거리 코너에 있는 2층짜리 동네 마트, 이젠 그쪽에 시선을 둔다. 애호박 가격으로 ‘가게 별 야채 가격’을 가늠하곤 하는데, 보통 1200~1400원 하는 애호박이 그곳에서는 980원이다. 가격 합격이다. 애호박이나 다른 야채들이 떨어졌을 때는 그곳에 꼭 들어간다. 애호박을 하나 쥐고 그 외에 다른 ‘할인하는 야채’를 찾기도 한다. 어제는 그냥 가격만 보고 지나갔다.


마트를 끼고 왼쪽 방향으로 몸을 튼다. 대로변에 코너를 지나 오른쪽엔 이상한 건물이 하나 있다. 절도 아닌데 절의 모습을 띈 어떤 ‘00 선원’ 같은 곳 말이다. 의아해하며 조금 더 걸어가면 이마트 편의점이 보인다. 물이 6개에 3000원이구나, ssg에서는 1900원에 배송료를 붙이던데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큰 차이는 없네, 하는 생각과 함께 또 한 번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곳에는 밥집 몇 개와 빌라 형태로 된 회사들이 조금 모여있다. 꽃집도 하나 있고 커피가게도 있다. 그 골목에서 사람들을 많이 구경하진 않았지만, 내가 못 본 거라 생각한다. 꽃집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순간’과 ‘시간’을 가득 품은 ‘꽃’을 이 골목에서 판다는 건, 그 꽃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여러 품목 중에서 꽃은, 커피보다 더 유동인구가 많아야 재고처리에 애를 먹지 않을 것 같단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대엔 문이 항상 닫혀 있어서 내부를 확인하기엔 조금 어려웠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헬스장이 나오고 몇몇 카페와 떡볶이집, 세탁소도 등장한다.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골목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대로변이 등장한다. 이번 대로변 코너에는 따릉이 대여소가 있다. 따릉이를 타고 집에 갈지 말지 항상 고민하는 구간이다. 집 앞에 따릉이 대여소가 없어 조금 더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걷는 게 지겨우면 한번 타고, 걸어갈만하면 타지 않고 지나간다. 신호등을 건너 다시 골목으로 들어오면 ‘우리 동네’라고 말할 만큼 눈에 익은 가게들이 등장한다. 마라샹궈 집도 장어집도, 곱창집도 등장한다. 그 공간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쳐 다시 고요한 골목에 도착한다. 집 앞에 도착해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간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가 없는지, 집에 마르지 않은 빨래는 없는지, 바닥에 떨어진 것은 없는지 한번씩 살펴본다. 쓰레기는 버려야 할지 하루 더 채워 넣을 지도 생각한다. 잠깐 침대에 앉아 유튜브를 본다. 그리고 나선 ‘에잉 이러다간 또 대충 자겠네’ 싶어 씻고 다시 돌아온다. 인센스 스틱을 하나 피우고 그 옆에 선풍기를 가져다 둔다. '내가 아는 사람들 다 건강하고 하고 싶은 것들 잔뜩 하게 해 주세요'라고 불을 붙일 때마다 되뇌인다. 그 인센스는 선풍기 바람을 타고 방 안에 퍼진다. 나의 바람이 내 공간에 가득 찬 느낌도 받는다. 침대에 누워 한번 더 그 향을 맡는다. 최근에 산 조명도 한번 켜서 천장에 비춰보았다가 다시 끈다.


혼자 잠들러 오는 길을 오늘도 걸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스프레소와 설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