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찜 재료를 사러 동네 마트에 갔다. 걸어 다닐 땐 ‘가깝네’라고 느꼈던 곳이었는데, 막상 목적을 갖고 가려니 멀게 느껴진다. 도착하니 매대에 놓인 ‘저렴한 애호박’ 이 또 내 시선을 끌어당긴다. 애호박을 사러 간 게 아니니 매몰차게 시선을 옮겨본다. 그리고 다시 꽂힌다. 그리고 3개 묶음으로 파는 애호박을 집어 든다.
그다음 배추찜에 쓸 배추를 찾는다. 알배추는 주먹만 한데, 그 뒤쪽에 있는 고랭지 배추는 성인 머리 크기만 하다. 성인 머리만 한 사이즈의 배추를 들고 정육코너로 걸어가, 우삼겹과 대패 삼겹살 중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한다. 뭐가 더 맛있었는지 잘 모르겠던 터라 우삼겹을 선택했다.
처음은 배추 손질이 필요했다. 배추 아랫부분을 잘라내고 한 겹 한 겹 떼어내며 이파리 사이사이를 씻어 말렸다. 우삼겹도 잠시 상온에 꺼내놓는다. 돌돌 말린 모양으로 얼려져 있었기 때문에 배추 사이에 껴놓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양파와 당근도 꺼낸다. 당근을 좀 길게 타원형으로 썰어둔다. 씻은 배추를 먼저 펴 놓고, 그 위에 당근과 우삼겹을 펼쳐본다. 우삼겹은 많으면 더 맛있으니, 한 줄이 아니라 두 줄로 넣어둔다. 차곡차곡 배추 위로 계속 재료들을 쌓았다. 그렇게 납작한 냄비에 가득 채울만한 수준이 되면 멈춘다. 중간에 잠시 틈을 만들어 양파와 팽이버섯을 넣는다. 그 위엔 부추와 고추도 올려놓는다.
그럼 이렇게 된다.
육수는? 자취인들의 베프, 치킨스톡으로 냈다. 치킨스톡 두 수저와 물 가득, 그리고 간장 한 수저, 고춧가루 한 수저, 마늘 한 수저를 같이 넣었다.
그렇게 나의 첫 배추찜이 만들어졌다. 첫 손님에게 대접했다. 맛있다는 칭찬을 받았고 그 영광을 치킨스톡에게 돌렸다. 레시피에게 감사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전부 따르지 않았을 때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도 마음이 편했다. 배추찜을 먹으면서도 첫 손님과 그런 이야기만 했다. 너의 삶과 나의 삶은 참 불안해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는 둥 말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타인이 인식하는 나 말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 이 이미지가 너무 불분명하기에 불안하다. 예전엔 타인이 나의 ‘치킨스톡’ 이 될 것이고, 세상은 내게 ‘레시피’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나이를 먹고선 더 이상 치킨스톡 같은 안전장치도, 레시피도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각자가 자신만의 ‘숟가락’을 들고 직접 ‘간장’과 ‘닭고기’, 그 외의 재료를 조합해서 ‘치킨스톡’을 만들어야 했다. 치킨스톡을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스스로의 경험이 잔뜩 묻어있는 인생의 ‘레시피’에 따라 그 치킨스톡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 먹고 있는 배추찜 같은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