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가는 길에 노래방이 하나 있다. 4곡에 2천원, 30분에 3천원하는 코인 노래방인데, 몇번 들러보니 사람들이 없어 편히 갔었다. 최근 들어 세번이나 빠꾸를 맞았다. 5분남았던 때는 그나마 앉아서 기다렸지만, 15분이나 30분을 기다리라는 말엔 다음에 오겠다고 하며 나왔다. 나도 15분 부르려고 온건데 15분을 기다리라니? 집에서 불러야지, 하고 나왔다.
하지만 집이 줄 수 없는 노래방만의 무언가가 있다.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부르면 한없이 잘 부르는 것 처럼 느껴진다. 내가 내는 바이브가 마치 가수의 바이브 인 것 마냥 잔뜩 스스로에게 취해 ‘쌩 쑈’를 할 정도다. 특히 가수들의 무대를 몇 번 정도 본 경우엔 그런게 훨씬 쉽다. 가수들이 감정을 넣는 모습을 보고, 그 가사 부분에서 나오는 표정을 따라해본적도 있다. 친구들 결혼식 축가를 잔뜩 불러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노래방은 다르다. 어둡고 파란 공간에 나를 비추는 화면 하나를 본다. 앞쪽에 놓인 두개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나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몇 분 머물러 있지도 않았는데 그 공간에서 나는 계속 현실 자각을 한다. 가사를 틀리게 부를 때 특히 그런데, 박자를 놓쳐 따라부르지 못하는 랩 부분에서는 노래 예약한 게 민망할 정도다. 마이크를 통해 듣는 내 목소리가 영 시원찮다. 이렇게 작고 뻔한 목소로 불러왔다고? 풍부한 성량은 무슨, 어린아이들이 동요 부를때나 내는 목소리로 들린다. 올라가지 않는 고음을 만나면 포기하기도 한다. 노래야 넌 흘러라 난 멈추련다 하고.
솔직히 노래방에서 이런 수준으로 자아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러려면 홍대 길거리 공연장에 갔어야지 왜 코인노래방에 간 것인가. 기계들 눈치를 왜 보고 있냐는거다. 또 한번 스스로를 리뷰하고 타박한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도 에고와 이고의 균형을 맞추고 싶어하는 나는 어쩔수가 없다. 포기했다. 그냥 이런 꼬라지를 두고보기로 했다. 노래를 고르는 정적의 순간엔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다가, 막상 노래를 시작하면 한없이 뽕에 취하는 나 자신 말이다. 3,2,1 이란 숫자는 내가 박혜원이고 권진아다, 라는 마인드셋팅도 해본다. 없는 감정도 짜내어 ‘마치 어제 이별한 양’ 불러제낀다. 그 노래가 끝나면 또 다시 현실 자각을 한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부르며 스트레스 풀고 자기검열하며 스트레스 받고를 반복한다.
이 모든게 그 2천원짜리 노래 4곡을 부를 때 일어나는 일이란건 다들 아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