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대량 구매

by 크게슬기롭다

몇 달간 반복적으로 시도한 챌린지가 하나 있다.

“어떻게 하면 대량 구매한 야채를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시작은 한 끼에 200g짜리 야채를 챙겨 먹어야 했던 어느 날의 나의 고민에서였다. 주변 샐러드 가게에서 야채를 사 먹자니 항상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가격에 ‘보관비용’ 또는 ‘소분 비용’ 이 포함되었다는 걸 생각하진 못했던 때였다. 저 양배추를 집에서 사서 먹으면 며칠을 더 먹을 수 있는데, 왜 잘게 잘라진 야채를 사 먹어야 할까, 싶었다. 쿠팡에서 파는 1kg짜리 야채를 사 먹고 몇 번 버리던 내 과거가 있었지만, 하루에 600g씩 야채를 먹는다면, 일주일 정도 가는 야채를 4.2kg씩 사면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다양한 야채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리바게트 샐러드 하나가 7000원 정도 하니까, 14만 원 정도를 내야 하는 것에서 3만 원, 4만 원으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주방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익숙지도 않은 내게, ‘야채 잘 소분해서 저렴하고 똑똑하게 먹기’는 하나의 이상적인 목표였다.


게다가 나는 그 당시 최적화 모델에 대해 꽂혀 있던 때라서, ‘스스로 최적의 지점을 찾을 줄만 알면 된다’ 고 생각했다. 모든 것들을 머신러닝 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야채가 더 빨리 시들면, 그 ‘예상한 수준’을 가지고 다음번에 야채 살 때 반영하면 될 일이었다. 10KG를 사서 다 먹지 못하고 버렸다면, 그다음에는 조금 덜 사는 방식 말이다. 으레 하는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최적화 모델에 너무 심취해있던 터라 저 모든 것들을 정량화하고 오차를 학습하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내 손에서 테스트된 야채는

알배추 10KG

시금치 10KG

콩나물 3KG

오이 10KG

양파 15KG


이었다.


새로운 야채를 살 때 어떤 루틴이 있다. 일단 가게에 들러 ‘너무나 많이 무한대로 먹고 싶었던 야채’를 골라 구매한다. 그러고 나서 그걸 ‘샀다고’ 동료에게 이야기도 한다. ‘저 오늘 시금치 10KG 샀어요… 오늘은 콩나물 3KG에요…’ 그리고 그걸 산 이유를 굳이 덧붙인다. 바로 옆에서 파는 동일한 콩나물 가격이랑 비교했더니 가장 저렴했다느니, 이렇게 모아서 좋아하는 물건 사는 데에 보태겠다느니, 다양한 방식으로 저 ‘대량구매 챌린지’를 합리화했다. 아마 동료는 듣기 괴로웠을 수도(!) 있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항상 정량을 구매하고, 적절하게 자기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종종 5KG가 넘는 야채를 구매하고 그걸 어떻게 관리해서 먹을지 브리핑하곤 한다. 브리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박스 안에 담겨있는 야채들의 개수를 센다. 총 몇 개, 그중에서 내가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하루 개수는 몇 개, 만약 그게 200G을 넘어가는 수준이면 그때부터는 모두 냉동실에 들어갈 운명이 된다. 고구마와 당근이 그랬고, 브로콜리가 그랬다. 알배추도 좀 잘라서 얼려보기도 했고 시금치는 익혀서 반찬통에 넣어 얼려보기도 했다. 그런 작업들을 반복하다 보면 냉동고에 너무나 많은 야채들이 들어가게 된다.

그럼 또 고민을 하게 된다. 매번 아침에 200G씩 모아져 있는 것을 들고 가기도 벅찬데, 저 모든 냉동에 얼려진 것들을 꺼내기가 영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제 지퍼백을 열고 200G에 맞춰 여러 가지의 야채들을 섞어 넣어버린다. 그렇게 또 섞어서 소분을 한다. 이 짓을 반복하면서 내 시간과 돈이 교환되고 있음을 계속해서 느낀다. 10만 원을 아끼자고 하루 종일 야채를 다듬고 넣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분명 누군가는 내게 미련하다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인생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보기 위한 나의 몸부림 정도라고 생각하면 참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짓을 반복하면서 내게 남는 건 이야깃거리다. 글 쓸 거리, 그리고 누군가가 만약 내게 ‘인생에서 해본 뻘짓’에 대해 물어본다면, 이제는 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알배추와 시금치… 각기 다른 식재료들을 혼자 어떻게든 먹어보겠다고 다양한 장기보관법을 찾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게 또 성공적이지도 않았고, 누가 보면 ‘그런 거 할 시간에 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뭐 그래. 쉴 수도 있지. 쉼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내겐 아직 저 야채들을 잘 다루어보는 것에서 오는, 그러니까 나의 호기심을 해결하는데에서 오는 그 희열이 인생의 낙이다. 누군가가 내 삶의 취미를 물어본다면, 2023년 1월의 나는 <야채 장기 보관을 위해 손질하기>라고 하련다.


이번엔 토마토 5KG와 당근10KG, 양파10K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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