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샷따"를 내리고 나서

2시간 동안 도시락 싼 이야기

by 크게슬기롭다



나 000으로 사는 삶을 모두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내일, 이번주 내내 먹을 도시락을 준비했다. 해동해 둔 야채와 지난번에 세일한다고 산 콩나물, 그리고 적겨자(?)라는 이름의 어떤 이파리 채소를 씻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부터 조금씩 넣었다. 콩나물은 신기하게도 전혀! 상해있지 않았다. 그래서 물로 잘 헹군 뒤 야채 위에 얹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이번엔 쌀을 씻기 시작했다. 엄마집에서 얻어온 쌀들로 열심히 밥을 해 먹는 중인데, 너무 많이 받아온 탓인지 쌀통 순서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래전에 얻어온 작은 쌀통을 하나 발견했다. 먼저 먹어야겠다 싶어 뚜껑을 열었더니 아주 자그마한 벌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으악

비위가 좀 상했다. 괜스레 기분이 나빠졌다. 누구한테 물어볼까 하다 구글에 검색했다. ‘쌀벌레가 생긴 쌀’ 까지만 쳤는데 자동완성이 바로 만들어졌다. 쌀벌레가 생긴 쌀 먹어도 되나요? 그리고 구글은 ‘먹어도 된다고’ 했다. 다만 쌀을 씻다 보면 둥둥 물 위에 뜨는 쌀들이 보일 텐데 그건, 이미 쌀벌레가 먹어 영양소가 없는 알갱이라고 했다. 작은 통에 벌레와 함께 있던 쌀은 3.5인분 정도였다. 평소 같으면 조심스레 쌀을 씻었을 텐데, 물을 버릴 때도 쌀 하나 잃어버릴까 조심조심 물을 따라 버렸을 텐데 이번은 아니었다. 벅벅 씻었다. 정말 빨래를 하듯 손을 움직였더니 콩 껍질들이 죄다 물 위로 올라와 둥둥 떠있었다. 물을 한번 버릴 때마다 콩 껍질이 죄다 흘려졌다. 그리고 가끔 중력을 이기지 못한 쌀이 그릇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려니 했다. 쌀벌레가 다 먹어버린 쌀이려니 싶었다. 혹시나 모를 쌀벌레를 다 처단하기 위해 더 열심히 씻었다. 손가락으로도 씻고, 손바닥으로도 퍽퍽 짓이기(?) 기도 했다. 너무 세게 한 탓인지 쌀이 모양을 잃고 부서져 있기까지 했다. 그래도 열심히 헹궈냈다. 아마 3.5인분에서 3.4인분 정도로는 줄어들었을지도 모르다.

그리고 남은 4.5인분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쌀통을 꺼내 들었다. 아까 통엔 콩이 많았는데, 이번엔 현미가 더 많았다. 아무리 벅벅 씻어대도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잡곡들이 전혀 없었다. 방금 전 밥과 잘 맞겠다 싶어 또 열심히 씻고 밥솥에 예약 취사를 걸어뒀다. 잡곡 불리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12시에 완료되도록 세팅을 했다.

다시 야채로 돌아왔다. 브로콜리 색을 보니 아주 잘 익어있었다. 콩나물도 꽤 숨이 죽어있었다. 콩나물 무덤 아래를 살짝 수저로 들어 올려보니 야채 삶은 물이 잔뜩 생겨있었다. 야채가 기름에 볶아진 게 아니라, 기름 물에 중탕이 된 수준이었다. 익힌 야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떤 것이었다. 프라이팬 불을 끄고 야채를 담을 그릇을 잔뜩 준비했다. 지난번 도시락을 시켜 먹고 얻게 된 다회용품 8개. 약 3일 치 아침-점심-저녁이다.


냉동 닭가슴살 8개를 꺼내 그릇에 넣어두었다. 앞으로 몇 분 후면 밥이 완료된다. 그럼 그 밥을 또 150g씩 덜어 야채 옆에 넣어둘 것이다. 밥을 150g씩 꺼내다 보면 꼭 몇 입 먹게 되는데, 오늘은 정말 먹지 않을 것이다. 그릇에만 정확히 턱턱 덜어두고 쿨하게 락앤락 뚜껑을 닫을 테다.


12시가 되었는데, 아직 뜸 들이기 시작도 안 한 나의 밥을 어찌할까. 얼른 잠들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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