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백마리를 먹었을까, 생선?
(이미지 출처 : https://www.10000recipe.com/recipe/6931149 )
서울에서 태어나 나고 자랐지만, 부산사람 만큼 생선 구이를 많이 먹었다고 자부한다. 어릴적 엄마는 아버지를 위해 생선 몇마리를 구워댔다. 나와 동생이 생선을 먹을 수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생선들이 나의 몸을 통과해댔다.
조기의 가시를 바르면서 젓가락질을 배웠다. 나름의 조기 손질하는 방법도 배웠다. 먼저 꼬리 부분을 똑 잘라낸다. 왼손 검지와 엄지로 꼬리를 잡고 오른손 젓가락으로 살점 중앙에 있는 등 가시를 한번 쓸어준다. 그러면 양 옆으로 살점만 똑 하고 떨어진다. 살점 두 덩이를 한입씩 먹고 꼬리를 옆으로 치워둔다. 그리고 나선 조기 양 끝 가시들을 열심히 발라댄다. 가시 바르기에 서툴면 꽤나 많은 양의 살점들을 놓치게 된다. 세밀하게, 정말 가시만 발라내고 남은 모든 조기의 살들을 먹겠다는 태도로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꽤나 긴(약 20초) 젓가락질로 바깥 가시를 모두 없에버리면 마지막 하나가 남는다. 가장 쉬운 가시, 등 가시다. 젓가락으로 슥슥 밀어만 내면 가시가 모두 사라져있다. 왼손은 아까 생선 꼬리를 잡은 탓에, 조기에 발라놓은 카레 가루가 조금 묻어있다. 그 손끝의 짭짤함을 닦아내고, 젓가락질을 마친 생선들을 집어먹기 시작한다. 수저로 먹어도 된다. 밥의 반찬이 아니라는게 반전이다. 그렇게 조기 두 마리는 밥처럼, 수저에 얹어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네 마리, 나와 동생은 20살 이후론 두 마리씩 먹는다. 엄마도 두마리면 충분하댔다. 파스타용 접시엔 파스타보다 생선이 더 많이 올라갔다. 게다가 ‘가시 그릇 가져와’ 는 아버지의 레파토리였다. 어느 순간 몸에 베인 말 때문에, ㄱ만 나와도 저기 부엌에서 가시그릇을 찾기까지 했다. 쇠로 된 밥그릇 뚜껑부터 작은 종지, 키친타월까지 다양한 그릇을 사용했다. 가장 처리하기 쉬운, 키친타월이 결국 선택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어와 꽁치의 가시를 발라먹지 않고 씹어먹기 시작하면서 가시를 발라낼 필요가 없어졌다. 가시 그릇은 목적을 잃었다. 엄마는 조기보다 양미리를 더 많이 샀다. 꽁치와 고등어는 김치찌개에, 양미리는 조림으로 식탁위에 등장했다. 구이보다 양념에 절여진 것들이 더 많아진 것이다. 가시를 바르기에 다소 애매한 크기의 생선, 그들은 좀더 연하고 부드러운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뱉어내기에도, 삼키기에도 애매한 어떤 상태. 하지만 눈 딱 감고 씹어먹으면 문제가 없는 상태.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젓가락질에서, 무언가를 합쳐버리는 젓가락질이 필요한 메뉴로 바뀌어갔고, 가족들은 거기에 익숙해져갔다. 꽁치와 고등어는 김치로 둘둘 싸서 먹는 맛이 좋다며 밥과 함께 먹었다. 양미리는 같이 무쳐진 야채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고, 밥위에 얹어 입 안 가득 넣고 씹었다. 운이 좋으면 양미리의 알도 느낄 수 있었다. 뽀드득 거리며 터지는 알 소리도, 질겅거리며 씹는 알 맛과 양념 맛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한 번에, 한 쌈에, 한 입에 먹으며 밥과 생선의 균형점을 찾아댔다. 분리하지 않고 합쳐 먹는 것으니 간편하기도 했다. 적은 젓가락질과 큰 수저질 한번이면 한 끼니가 끝이 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점점 젓가락이 아닌 수저로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