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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을 만큼 몸이 무겁고 마음이 답답한 순간 말이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짚은 건 아닐까, 하고 나의 선택을 바꾸고 싶어지는 순간 말이다. 이런 상황들은 누구나 한 번씩 있다고들 하지만, 그 타인들의 조언이 내게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의 말도 들려오지 않을 때는, 그런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매직 센텐스'를 찾아야 한다. 나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어제의 내가 꿈꿨던 그 목표에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게' 하는 힘을 줄 수 있는 문장 말이다. 그렇지 않게 되면, 점점 스스로가 느낀 '감정'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너무나 소중하지만, 그 느끼는 데에 들이는 시간과 포기하게 되는 수많은 다른 리소스를 고려해 보면 그 소중함이 조금... 무색해질 때가 있다.
내 감정에 취해있던 시절은 누구나 꼭 한번 즈음 겪을 것이다. 열심히 한다는 느낌, 감정에 취해있던 때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게 할까?'가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 알아주겠지' 라며 자기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느니,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느니, 스스로 구하려고 하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느니 하면서 스스로의 방향을 합리화한다. 게다가 그 노력이 꽤 만족스러우면 자기 자신에 더 강하게 취해버린다. 열심히 하는 나 뽕에 취해, 그게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남들보다 더 성장이 느리거나, 아예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는 또다시 스스로에게 합리화 가득한 문장을 던진다. 이 모든 것은 '겪어야 할 시련'이었다느니 '하늘은 내가 버틸 수 있는 고통만 준다' 라느니 하는 말로 자기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꾸준히 찾는다. 그리고 나선 성장하지 않았다며 너무나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자기 위안일 뿐이다.
결국 성장하지 않았던 건, 성장하는 방법으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풀업을 잘하기 위해 연습해야 할 건, 전완근도 어깨도 등도 아닌 '풀업 연습'이다. 성장하고 싶다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쳐온 나의 마음은, 성장하지 못한 나의 결과물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의 최종 방향은 '지금으로부터 벗어나는 수준의 성장'이었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열심히는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게 없다면 그걸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제공하고 있는 여러 프로세스에서, 이미 그 사실을 몇 번이고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사지인 우리들은 그 부분만 못 본 셈 치고 '나 열심히 살고 있소! 날 도우시오!'라는 태도로 세상에게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내맡겨버린다. 자기의 '성장 모멘텀'까지 모두 상황에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다. 열심히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어제의 나는 '노동'이라도 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끝에선, 노동이 결국 일로 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슬퍼하는지 알아챘다.
(프롬프트 : painting, running hard no result, bing , DALL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