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마다 넓어지는, 음악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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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힘들 때가 있다. 수요일이 그렇고 밤 11시가 그렇다. 남들과 이야기를 잔뜩 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줌 미팅이 끝나고 펼쳐놓은 파일을 정리할 때도 힘이 부친다. 호빵맨처럼 머리를 바꾸면 원기회복을 할 수 있는 몸이면 좋으련만, 몸은 더 이상 나의 뇌의 요청사항을 빠릿빠릿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계속해서 뇌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만해, 멈춰, 잠깐 쉬어가야 할 것 같아. 그런 신호들은 쉽게 무시된다. 지금 눈앞에 놓인 것들을 '어찌 되었든 처리해야 하니까' 그렇다. 더 악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뇌 마저 백기를 든다.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가 온다. 잠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된다. 끊임없이 어떤 '정보'를 처리하던 컴퓨터가 '뻑이 난 것'처럼 뇌가 모든 동작을 멈춘다. 그땐 생각하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제일 어려운 건 감정처리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이 조절되지 않는다. 참고 싶지만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포기하고 싶은 상태가 된다.


나도 그랬다. 최근에 '풀어내야 했던' 업무 속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말로 풀어내려고 해도 계속해서 막혔다. 아주 피상적인, 껍데기 부분만 잡고 끊임없이 늘어지고 있단 느낌을 많이 받았다. 더 깊이 들어가 핵심을 잡고 해결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시간들 때문에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돌아보기보단,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컸다. 그놈의 호기심, 호기심이 분명 내게 좋은 선택을 가져다주는 건 맞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거부하고 싶었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한 짜증이었다. 다 내가 만든 것들이었다. 내가 만든 상황이라 나를 탓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 진한 짜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음악이 떠올랐다. 원래 좋아하던 음악들 말고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그러니까 추천 시스템에 잔뜩 '절여진' 나의 취향이지만 새롭게 발매되었거나 아직 내가 들은 이력이 없는 노래를 (유튜브 알고리즘이) 찾아야 했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그 알고리즘은 내게 처음 재생되는 음악이지만 다 들을만한 모순적인, 마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노래를 가져다줄지 고민을 했다. 몇 초 정도 고민을 하고선, 결국 랜덤으로 음악 몇 개를 타고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시작점으로 찍고, '뮤직 스테이션 시작하기'를 누르고, 그 뮤직 스테이션 속 음악 리스트 가장 아래에 있는 생소한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뮤직 스테이션 시작하기'를 눌렀다. 두 번 정도 액션을 취하고 나온 음악은, 바로 이것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SlaIBACpUM


몇 초 듣지도 않았는데 뇌가 새롭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와 이런 게 있다니 싶어 재생목록에도 추가해 두었다. 너무 반가웠다. 퇴근 후 이런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었던 어린 시절도 잠깐 떠올랐다. 내가 힘들지 않았다면 이 음악을 만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힘들었던 '덕분'이라고 말하기엔 좀 앞뒤가 맞진 않는다. 그래도 그 힘든 순간이 이 재즈를 만날 수 있게 한 매개체였던 것은 맞다. 이젠, 힘든 어떤 순간에도 예전만큼 분노가 크게 일어나진 않을 것 같다. 그때의 고통을 안고 '새로운 나의 취향 찾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혹시 알까. 이런 방식 끝엔, 정말 나만의 보물이 있을지?


230913_4.jpg On Green Dolphin Street / bing / DALL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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