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용돈 : lost&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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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10시부터 5시간 내리 떠들어댔다. 어떤 때는 나의 이야기를, 어떤 때는 남의 이야기에 질문을 하며 그 시간을 가득 채웠다. 점심을 먹고, 레몬 머랭 케이크를 사러 가는 사람 뒤를 따라 쫄래쫄래 합정역 주변을 걸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있던 그 길가는 초록색 이파리들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나무들 뿐이었다. 봄에 지나다닐 땐 활기찬 봄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면, 지금 오늘의 가을엔 약간의 쓸쓸함까지 느낄 수 있는 바람이 가득 불었다.


아아, 가을이다. 추석 아침마다 맡게 되는 그 날카로운 추석 냄새가 점점 날 것만 같다. 높은 파란 하늘이 있었고, 선선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이 불던 때로 흘러간다. 서늘한 그 바람을 느끼면, 10살도 채 되지 않던 무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분홍색 날개가 달린 한복을 입었던 그때, 여러 번의 절을 하며 용돈도 꽤 받았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챙겨줄' 그 복주머니를 챙겨선 기어코 나만의 물건을 사겠다며 집을 나섰던 그때였다. 마침 집 주변 서점에서 사고 싶었던 어린이 도서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스티커북 같은 거였나, 사고 싶었지만 살 수 없던 책이었다. 가격대가 좀 있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관점에선 살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까?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던 책을 살 만큼의 돈이 모였던 게 너무 행복했다.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고 용돈을 받고, 밥을 후다닥 먹어 해치운 뒤 바깥으로 나왔다. 동생과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책을 샀다.


1만 원 미만짜리 책이었다. 초록색 돈 한 장을 내고선 거스름돈을 받아 복주머니에 넣고 되돌아왔다. 책을 샀다고 자랑한 다음, 남은 돈을 찾아보았다.


없었다.

복주머니엔 거스름돈뿐이었다. 초록색의 그것 뭉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른 한 명에게 1만 원씩 받았던 그 용돈이 내 주머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동생이 가져갔나,라고 생각해서 한번 살펴봤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나 혼자서 어떤 짓(?)을 하도 잃어버린 것이었다. 눈물이 났다. 꽤 큰돈이었고 그걸로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그려본 다음 기껏 처음 선택한 게 책이었는데, 그다음 물건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허탈한 마음도 잠시, 서점까지 가는 길목을 죄다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찾았다!

마침 그 시간대에 지나다니던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돈은 바닥에 설치된 어떤 턱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대충 보면 보이지 않을, 자세히 바닥을 봐야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정말 다행하게도 돈은 '나름 숨겨져' 있었다. 재빨리 주워 담아 돈을 세보았다. 아까 용돈에서 1만 원이 없는 딱 그 수준이었다. 네 장이 꼬깃꼬깃 네 번 접힌 채로 있었다. 그 돈들은 한 번도 접은 적이 없는 신권들이었다. 이건 정말 내 돈이었다. 내가 아까 뜀박질하다 잃어버린 것들이 맞다고 느껴졌다.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허리를 쭉 폈을까, 그 순간 하늘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 서늘했던 그 바람이 따스하게 느껴졌었다. 엄마한테 혼날 걱정도 사라져서 마음이 편안했다. 그때 본 파란 하늘은 참 평온해 보였다. 바람을 느끼며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추석 아침의 고군분투가 떠오른다.

_3b772e3f-b46e-47c4-a3e9-04bec4b457e3.jpeg blue sunny high sky in fall in city / bing / DALL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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