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 lost & not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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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추석 용돈처럼 돈을 다시 되찾고 싶단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서울시에서 청년들에게 지원해 주는 금융 상담인 '서울 영테크'에 신청해 두 번의 상담을 받고 마지막 상담을 앞둔 탓 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돈을 찾는 순간'은 이제 다시 찾을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출하고 되돌아와서는 그 돈을 다시 찾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 내가 쓴 것들이다. 내 무의식을 탓할 수도 없다. 어느 누가 무의식 중에 지문을 인증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하겠나. 다 내가 한 업보다.


월급은 '잃어' 버렸지만 '찾을 수'는 없다. 담당 CFP님과 상담을 받을 때, 부단한 노력을 하기로 다짐을 했건만 영 쉽지 않았다. 만들어지지 않은 습관 탓을 하며 넘겨버렸을 뿐이다. 결국 나는 가계부를 쓰는 습관을 들이지 않은 것뿐 아니라 '쓰지 않는 습관'을 강화시켰다. 차라리 0점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는커녕 -를 향해 며칠을 더 걸어간 것이었다. 아차하고 이제야 뒤돌아보았다. 다들 돈도 잘 벌고 꼼꼼히 모으고 있는 것 같은데, 뭐 얼마나 풍족하다고 이렇게 모르쇠를 하고 마구 써댔을까 싶다.


장점도 있다. 돈을 쓰다 보면 나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돈을 씀으로써 '선택하는 연습'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내면서 선택하는 것들에는 조금 더 나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가령 김밥이 아니라 샌드위치를 선택하거나, 여러 가지 핸드크림 중에 딱 그것을 선택하는 것들 말이다. ETF 중에서 어떤 회사의 상품을 선택할지, 미국 주식 중엔 무엇을 골라 투자를 할지도 마찬가지다.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 알아보지 않고 선택하는 것 모두가 나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무료인 것들 - 회사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와 물, 과자 같은 것들 - 에는 상대적으로 나의 아이덴티티가 조금 덜 담겨있다. 어떤 것이든 마실만하면 되고 먹을만하면 된다는 생각이 조금 더 강해진다. 돈과 바꿀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때 가장 나의 행복 수치를 올릴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어떤 것들은 '시간'이 반영되어 있다. 또 다른 것은 사회적인 시선도 반영되어 있다. 멋진 옷을 입고 커리어우먼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도 담겨있다. 어린 시절의 열망이 담겨있는, 물건과 경험들을 구매할 때는 그렇다.


그렇지만 그 장점은 내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나를 찾는 중'이라는 핑계로 그렇게 월급을 잃고서는 꼭 후회를 한다. 뱅크샐러드에서 다운로드한 엑셀 분석 보고서를 보며 한숨도 쉬었다. 보면 볼수록 이게 내 것이 맞나 싶어 엑셀 프로그램을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괜히 핸드폰 속 인스타그램을 눌러보며 잠깐 도망쳤다. 그리고 '직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현실을 마주했다. 보면 볼수록 나의 월급을 돈의 형태 그대로 되찾을 구멍은 없다. 절망스럽다.


희한하게도 이런 상황 속에도 남은 것은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다녀왔던 길을 되돌아오다가 발견한 '돈뭉치'처럼, 나의 '지출 경로'를 들여다보면 그곳엔 나만의 보물들이 숨어 있다. 무절제 소비!라는 단어로만 보던 나의 과거를 긍정적인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는, 그런 기회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누군가는 이 또한 합리화의 한 과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부정 90, 긍정 10이었던 어떤 선택에 대해 '리밸런싱'을 시도하곤 한다. 그 선택 때문에 그런 물건과 경험을 구매하고 말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선택한 '생존방법'이었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워했지만 (돈을 쓰면서라도) 버텼던 나의 '버티기 자세'라고도 주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을 버텨내기 위해 선택한 작은 소비들을 긍정한 이후에야 나는 '내 버티기 자세'를 소비가 아닌 다른 것들로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월급을 잃은 대신, 과거의 나를 찾았다. 그리고 이젠 지금의 나를 찾으러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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