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 920
지각한 이유? 크로스핏을 늦게 다녀왔다. 21시 45분에 시작하는 크로스핏을 갔다가 씻고 집으로 출발한게 11시 30분이었다. 게다가 흥이 생겨서 인스타그램에 운동 완료 인증도 했다. 요즘 올리고 있는 포맷에 맞춰 릴스를 편집하다가 졸지에 비오는 길바닥에 가만히 서있기도 했다. 운동한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 세고, 원하는 영상 세개를 붙여다가 배경음악에 맞춰 넣는 간단한 편집이었다. (인스타그램이 세상 모든 이들을 사진기사와 영상편집가로 만드는게 분명하다) 그때 이미 길에서 35분을 넘는 숫자를 보았다. 글을 쓰기로 한건 완전 깜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기한 전시를 하나 보았다. 제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유령 채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뒷모습과 옆모습이 담긴 사진을 섬유에 프린트를 해서는 줄에 달아두었다. 정말 그래보였다. 유령을 어디 잡아 놓은 것 처럼 말이다. 나는 ‘유령채집’ 하면 항상 카드캡터 체리를 떠올리곤 했다. 이름을 부르면 되돌아오는 유령, 그리고 그녀는 유령 채집가라고 생각했다.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그 애니메이션이 또 한번 떠올랐다. 같은 ‘유령 채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르게 풀어 표현할 수 있음에 놀라웠다.
홍 XX 작가님의 유령채집 영상을 남기고 싶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번, 가까이 또 한번 찍고선 인스타그램 콘텐츠로 또 남겼다. 흥미를 유발하는 텍스트를 하나 넣고선 업로드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이들의 눈엔 어떨지 몰라도, 유령 채집이라는 전시회를 채집한 건 또 나였으니 말이다. 유령이라고 생각하니 약간의 오싹함도 느꼈다. 인스타그램 편집을 하며 선택한 배경음악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이 무서운 BGM’이었다. 그렇게 글을 올리고 집에 터덜터덜 걸어왔다. 집에 들어가기 전 핸드폰을 보았다. 0시 4분!
완벽한 지각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글쓰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아침부터 계속 쓸만한 글 소재들을 발견하고 느꼈었는데 정작 그 글은 이렇게, 그 다음날에 쓴다. 인스타그램 업로드에 밀려 올리지 못한 브런치 글을 뒤늦게, 영상 업로드에 밀려 뒤늦게 올리는 텍스트 업로드를 이제야 한다.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글쓰기 주제 채집’ 도 기대된다. 전시된 것 처럼, 언젠가 나의 이 많은 ‘글쓰기 주제’ 들도 주렁주렁 매달아 채.집. 두글자를 달고 전시해두고 싶다. 사람들 누구나 그 채집된 것을 보고 맛보고 즐기고 공유하는 그런 공간도 한번쯤 만들어보고 싶다.
지각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미래를 향한 다짐으로 끝나는, 마구잡이 23.09.26 채집기록은 지금 여기서 방점을 찍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