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스크랩 #1 손에는 오장육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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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고 사촌 동생들과 놀다 들어와 또 한 번 밥을 먹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추석 행사를 끝냈다. 사촌들은 그들의 외갓집으로 떠났고 나와 엄마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도착해서 짐을 풀기 시작했다. 짐의 대부분은 반찬이었다. 나물 무침은 1층에, 생선은 아래 칸에 둘게요. 긴 연어는 4 등분해서 락앤락 통에 넣을 건데 만약 작은 고모네가 오면 이거 꺼내 드세요, 하나만 냉장고에 놓고 나머지는 얼려두려고요. 송편은 여기 있고 전은 이쪽에 둔 거니까 알고 계세요,라고 말하며 하나씩 정리했다. 다 정리하고 나니 이번 23년 추석행사도 끝이 났다는 게 실감 났다. 뭔가 아쉬웠다. 괜스레 할머니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할머니 저 배 아파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해결책 2개를 주었다.
야야, 냉장고 문을 열어봐라. 거기 맨 위칸, 그래 거기 젤 위에 너네 고모가 주고 간 요거트가 있다. 뭐 블루베리 뭐사코 하는거 있는데 그거 함 챙기봐라.
두리번거리며 냉장고 손잡이 위쪽을 보았다. 파스퇴르에서 나온 블루베리 요거트였다.
나 그거 안 먹는 거 알제? 난 쬐깐한거 먹잖아.
평소 같았음 '에이 아니에요. 이거 고모가 할머니 드시라고 사주신 건데 할머니 드세요' 하고 넘겨버릴 거였다. 그런데 왠지 그걸 냉큼 받고 싶어졌다. 할머니에게 먹겠다고 말하곤 하나를 챙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계속 중얼댔다.
할머니 근데 뇌랑 장이랑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저는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나 봐요. 지금 상태가 안 좋은가 봐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냉큼 스크랩을 하나 꺼내주시는 거였다.
이거 봐라, 잡지에서 오려뒀다. 여기 그림대로 맞춰서 손가락이랑 손바닥을 꾹꾹 눌러줘라.
그렇게 이 쪽지를 받았다. 내 몸 컨트롤 타워 지도를 받은 느낌이었다. 손바닥의 특정 부위들을 꾹꾹 눌러주면 그게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만성피로, 가슴 답답, 식체, 메스꺼움, 소화불량, 게다가 불안과 스트레스까지, 그 모든 괴로움을 이 지압을 통해 해결해서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지압 부위는 중지에서 시작해 손바닥 끝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있었다. 정말로 그 선을 따라 의식적으로 꾸꾹 눌러주면 오장육부가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옆에 서서 소장과 대장 위치인 손의 중간 부분을 눌렀다. 손바닥과 할머니의 스크랩을 번갈아 보면서 할머니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할머니 이거 여기 맞죠? 저 지금 대장 아픈데 여기 눌러야 하는 거잖아요' 할머니는 그림을 보더니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 그 위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할머니의 손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에 눈이 갔다. 이 모든 지압 위치를 눌러도 찾을 수 있는 건강엔 한계가 있을, 할머니가 보였다. 이제 더 이상 5분 지압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할머니의 건강을 떠올리며, 지압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