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파이앤타이거 Jun 15. 2023

[차와 닮은 삶] 차와 와인과 나


Date 2023.06. 15 / Editor 버들 (@beoddle)



너른 들판과 포도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풍경의 샹파뉴에서 만난 샴페인 생산자는, 자신을 밭을 일구는 농부로 불러주기를 원했다. 붉게 탄 얼굴 깊이 팬 고랑과 같은 주름, 그리고 단단한 나무껍질 같은 손이 그의 정체성이었다.



어느 날 저녁엔 함께 그의 오랜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엘 갔다. 주인이 직접 큐레이션한 와인과 함께 인근 지역 소규모 생산자들에게서 납품받는 식재료로 와인에 어울리는 플레이트와 간단한 요리까지 제공하는 곳이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한 테이블에서 주문한 와인을 열면 함께 즐기자며 다른 테이블에도 반드시 나누는 것이 그곳만의 방식이었다. 또 그날은 마침 스위스에서 치즈를 생산하는 젊은이들이 와 있었다. 농장에서 만든 버터를 우리에게 조금 나눠주었고, 세상에, 그날 맛본 버터에서는 정말이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신선한 풍미가 흘러나왔다. 


언젠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면 이런 가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변두리 동네 어디쯤 가겟세가 비싸지 않은 곳을 구석구석 내 손으로 매만지고 꾸며서, 낮에는 차를 팔고 저녁엔 와인과 소박한 요리를 내는 그런 가게. 가게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들을 보고 있으면 그걸 키워 수확한 농부의 얼굴과 울퉁불퉁한 손마디가 절로 떠올라 고마운 마음이 되는 가게. 차나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이 찻잎과 포도가 자란 땅은 어떤 곳일까 상상해보게 되는 가게. 좋은 먹거리와 마실 거리를 즐기지만 과장스런 격식을 차리기는 싫어하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러 홀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유쾌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가게. 


차에 대해서도, 와인에 대해서도 잘은 알지 못하지만 둘 사이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밭에서 밤낮으로 돌보는 농부의 손을 타고 자란 작물로 만들어진다는 것, 그럼에도 자연만이 결정할 수 있는 한 해의 작황이 가격과 맛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 재배된 땅의 떼루아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것은 해를 거듭하여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훌륭한 맛을 낸다는 것.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이 들수록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상 속 그런 가게의 주인으로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까? 그 저녁의 따뜻했던 기억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몇 번이고 되묻게 만든다.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나의 얼굴과 마음에는 내가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쓰이고 있다. 더듬거리며 써내려 간 문장들이 한 편의 글이 되듯, 그렇게 새겨지는 오늘의 시간들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작고 청결하고 모두가 웃고 있는 가게.



메뉴판 한켠에 적힌 가게의 철학. 거창한 말이나 전문 용어나 구호 없이도 나의 소비가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단숨에 믿어지게 만들었다.



동아시아의 좋은 차

Magpie&Tiger


www.magpie-and-tiger.com

@magpie.and.tiger




‘차와 닮은 삶’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와 닮은 삶] 정물화 같은 삶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