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23.06.02 / Editor 버들 (@beoddle)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집을 비운 뒤 돌아와 보니, 문이 없는 그릇장 안의 다기들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조르조 모란디(1890-1964)의 정물화를 좋아한다. 처음에 그의 정물이 간직한 고요함이 좋았고, 그다음 옷감으로 지어 몸에 두르고 싶은 우아한 색채가 좋아서 시간이 나면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림을 지배하는 고요함으로 치면 베르메르나 호퍼의 작품들과도 비견할 만하지만, 그 고요함 가운데 상상력을 매우 자극하는 숨 막히는 드라마틱함이 숨어있는 베르메르나 호퍼보다 모란디는 더 잔잔하고 더 몽환적이면서 동시에 사물 그 자체만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더 명징한 데가 있다.
최근에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모란디의 정물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애초에는 제각기 다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었을 기물들의 표면에 먼지가 앉아도 치우지 않고, 시간의 더께가 부여한 동질감을 지우지 않은 채 그렸다고 한다. 그렇다, 시간의 흐름은 서로 달랐던 많은 것들을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가거나 낡아지게 하고, 그걸 세월의 무상함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아름다운 한때는 금세 지나가지만, 그 뒤에 남아 먼지를 뒤집어쓴 것 또한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그 차분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어떤 사람의 마음을 더욱 끌기도 한다는 것을 오늘 모란디의 정물화를 보며 생각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역시나 음용할 차를 우릴 다기에 쌓인 먼지는 깨끗이 털어내는 것이 좋겠다. 차가운 물에 담가 부드러운 스펀지로 뽀득뽀득 씻은 다기를 쨍한 초여름의 볕 아래 늘어놓고 바싹 말린다. 일광욕하는 다기들 옆에 앉아 나도 햇볕을 쬐며 잠깐 졸아도 좋을 것 같다.
동아시아의 좋은 차
Magpie&Tiger
‘차와 닮은 삶’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