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23.05. 28 / Editor 버들 (@beoddle)
어느새 집 밖을 나서면 초여름 공기가 코끝에 스며드는 계절이 되었다. 이맘때면 늘 통통하게 잘 익은 황매실을 구해 일본식 매실 절임을 담갔다. ‘우메보시’라고도 부르는 일본식 매실 절임은 잘 씻어 물기를 말린 매실을 먼저 굵은 소금에 절인다. 절이는 과정에서 적자소잎을 넣으면 예쁜 자줏빛의 매실이 된다. 대략 100일이 지나 장마가 끝난 뒤에 꺼내어 한 알 한 알 늘어놓고 3일 동안 햇볕에 말리면 겉이 보드라운 가죽처럼 꾸덕꾸덕하게 마른다. 이것을 작은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아 보관하면 점차 숙성되어 해가 지날수록 더욱더 맛이 깊어진다.
한여름 상하기 쉬운 도시락에 함께 넣으면 매실의 살균 작용이 배탈을 막아준다고도 하지만, 그보다 덥고 습하여 새로 밥을 짓거나 반찬을 만들 의욕조차 없을 때 식은 밥에 방금 우린 녹찻물이나 다싯물을 붓고 매실 한 알을 올린 뒤 김을 곁들여 후루룩 먹으면, 분명 뜨거운데 뱃속은 시원해지고 새콤짭짤하게 여름의 입맛을 되살려주는 심플한 한 끼가 된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삶은 닭가슴살을 찢어 넣거나 들기름에 살짝 구운 두부를 올려주기만 해도 균형잡힌 영양까지 챙긴 식사가 되는 거다.
그렇게 여름 밥상의 효자 노릇을 하는 매실 절임을 작년과 올해엔 담그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이른 봄 매실을 주문할 시기를 놓쳤고, 아마 주문했다 해도 일일이 갈무리하는 복잡한 과정을 시기에 맞게 챙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작년과 올해는 유난히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챙기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봄의 딸기와 금귤 콩포트, 여름의 매실 절임과 살구잼과 토마토소스, 가을의 밤조림, 겨울의 글뤼바인. 제철에 나는 과실과 채소들을 마음껏 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며 저장식품으로 만든다. 제철엔 그 과정 자체가 순수한 감각적 기쁨이며, 어느덧 계절이 지나 밀봉해 둔 유리병 뚜껑을 뻥 하고 따면 음식이라기보다는 그 안에 든 시간과 정성을 먹는 작은 사치스러움이 기다리고 있다.
나도 모르는 새 일상이 조금씩 병들어 그 어떤 재미에도 시들해질 때,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 나만의 방법이 있었던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매실 다음은 무엇이었지, 지난 사진첩을 들추어보며 돌파구를 찾는다.
동아시아의 좋은 차
Magpie&Tiger
‘차와 닮은 삶’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