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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Jul 14. 2021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

과거의 몰락과 끝없는 회상, 그에 따른 버둥거림에 관하여.

영화 <블루 재스민>을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울한 재스민


재스민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 (2013)> 속 재스민은 내내 우울하다. 자주 멍하며, 갈수록 정신 상태는 피폐해져 간다. 그녀에게 있어 뉴욕에 살던 때는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지만, 이는 이미 과거로 과거로 밀려나고 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몰락이다. 뉴욕과는 전혀 다른 샌프란시스코의 삶을 배워야 하고, 다시는 뉴욕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매우 호화롭고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왔던 재스민이기에, 이 모든 것을 깔끔하게 뒤로 하고 새로운 삼의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매우 고된 숙제로 다가왔다. 이렇게 재스민은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냉철한 현실에 위태롭게 흔들리기도 한다. 우디 앨런의 과거 회상과 현재 사이의 비율을 조절하는 연출력과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은 매우 깊고 심리적으로 동요하게 하는 <블루 재스민>을 만들어냈다. 특유의 풍자와 현시대를 비꼬는 수다들로 여러 뛰어난 영화들을 제작한 우디 앨런의 능력은 이 영화에서 특히 크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몰락과 여운


과거 뉴욕에서의 재스민과 할

살아가면서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은 고통을 떠올려 본다면,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그토록 갈망하던 것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야 할 때,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할 때 등이 떠오른다. 앞의 두 상황은 아직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레 유추해볼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과 같은 경우에는 경험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하고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던 것 같은 그때 그 시절을 뒤로하고 또 다른 출발을 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때 그 시절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시간은 흐른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흐름에 따라 바뀌고 그때 그 시절은 과거가 되며 서서히 막을 내린다.


문제는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때와 같은 행복했던 시절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고 새로운 길을 떠나지만, 그 기억이 때때로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우리는 불현듯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 시절의 누군가를 만나면, 하루 종일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며 추억에 젖기도 한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처럼 행복하지 않다면 얼마나 그 시절이 더 생각나고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을까? 이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를 잊고 지금에 충실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재스민에게는 이 과정이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 뉴욕에서의 그때 그 시절은 지금의 재스민을 너무 세게 잡고 놔주지 않는다. 할과 처음 만날 때의 '블루문'이 들리기라도 하면, 지금은 캄캄해지고 금세 옛날이 고개를 들고 재스민을 쳐다본다. 그건 과거가 되었고 이미 몰락해버린 시절이지만, 재스민은 이를 망각하고는 깊은 여운을 느끼며 현재 속에 서있다.


그렇게 떨어지는 법도 배우는 것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재스민

재스민은 나름 새로운 길을 걸어보려 한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었고 이 기회에 인테리어를 배워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컴퓨터를 배워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은 그녀가 걸어왔던 길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뭔가를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 속에서 살아왔기에, 돈을 벌어야 하고 어려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재스민에게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어쩔 수 없는 수준 차이도 그녀에겐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과거의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들의 삶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양 없이 말을 하고, 교양 없이 내가 마시던 마티니를 한 입 맛보고, 낡은 차에 타고, 허름한 집에 산다는 것은 재스민을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렇게 사는 자신의 동생 진저와 그녀의 전남편 알, 남자 친구 칠리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 수밖에 없다. 옛 생각에 빠져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결국 지금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떨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행복하게 만들어줄 일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떨쳐내기 힘든 그때의 향기


유일한 탈출구 같던 드와이트와 재스민

그렇지만 익숙한 그 향기는 지워버리기 쉽지 않다. 재스민은 과거 알을 만나 풍족한 삶을 영위해왔기 때문에, 부유한 누군가를 만나는 편이 그녀에게 가장 익숙하고 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그때와 같은 삶을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드와이트는 그러한 존재였다. 예전에 알과 그렇게 시작했던 것처럼, 재스민은 온갖 거짓말로 본인을 만들어내고 드와이트의 손을 잡고 상승해보려 한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집에 살고, 내가 원하는 가구들로 집을 채워주며, 유럽에 가서 살고 향후 정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드와이트의 말은 재스민에게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쇼윈도 넘어 결혼반지를 바라보던 재스민의 표정은 현재에는 더 이상 볼 수 없던 매우 밝은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잊지 않아야 한다. 이건 잠깐의 일탈이었으며, 그녀는 그 가혹한 현실을 맞아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다. 우연히 만나 꿈을 꾸는 재스민을 깨우는 알의 날카로운 말들은 그녀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1919)>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지나치게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기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워. 다른 사람은 운명을 자기 속에서 느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그때 그 시절


재스민과 샌프란시스코의 친구들

생각해보면, 재스민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때 그 시절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과거는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미화되고, 예쁜 것만 남는다. 한없이 밝고 맑았을 것 같지만, 사실은 할의 사기로 이뤄낸 것들이었고 본인은 눈을 감고 있던 것이다. 할은 결혼 생활 내내 외도를 저질렀다. 그녀는 사치와 물욕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결과물이었지만 최고점이었다고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쇼핑과 보석이 달린 팔찌는 점점 정신적 빈곤 상태로 몰아가고 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편견과 얼토당토 하지 않는 경멸이 재스민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었던가?


재스민이 그렇게 바꿔놓고 싶어 했던 진저는 금전적으로 보다 여유로워 보이던 사운드 엔지니어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그는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재스민이 경멸하던 칠리는 진정으로 진저를 위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돈과 물질에서 오는 행복과 만족이 전부라고 여기던 재스민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어쩌면 재스민은 현재의 불안을 본인이 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을 너무 좁게 보고 살아온 본인의 책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어느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있을 때는 다른 면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필요성도 못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혹여나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막상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과정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작업일 것이다.


꼭 그때와 같은 바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칠리

재스민은 화려했던 동부의 대서양을 뒤로하고 서부의 태평양과 마주한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사실 영화는 재스민의 완벽한 복귀와 적응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내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우울하던 그녀를 처음부터 끝까지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결국 또 예전을 생각하며, 과거의 자신과 대화하며 정신적 피폐를 되풀이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재스민이 시도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마 그녀는 다시 뉴욕의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한때 여유롭게 바라보던 대서양의 찰랑거림은 여기 샌프란시스코에도 있다. 똑같은 바다는 아니고 똑같은 방향은 아니지만, 언젠가 또 다른 행복이, 결이 다른 행복이, 그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방식의 행복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아버지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편한 하버드대생의 신분에서 내려와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재스민의 아들은 그녀보다 앞서 가는 존재이다.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을 사는 것이다. 지금은 오클랜드에서 중고 악기를 팔며 살아가지만 그게 더 떳떳한 삶이고, 과거에서 아직도 허우적대는 재스민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스민은 오랜만에 만난 아들 대니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움


끝없는 재스민의 과거를 향한 향수. 유치환 시인은 이와 같은 그리움을 그의 시 <그리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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