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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Dec 11. 2021

아담 맥케이의 <돈 룩 업>

현대에서의 종말에 관하여.

아담 맥케이


Adam McKay

감독 아담 맥케이. 그 특유의 편집 기법과 가벼운 '척'하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정말 좋아한다. 어딘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B급 영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영화에는 오히려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사회를 관통하는 풍자는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주인공들이 툭툭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비속어와 함께 무게가 실려 있다. 그의 전작 <빅 쇼트 (2015)>를 처음 봤을 때 느낀 황홀감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왜인지 잘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하라고 영화가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지는데, 군데군데 나오는 너무나도 적절한 인용 어구, 짧은 클립 영상, 불현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어려운 경제적 용어들을 설명해주는 연출은 정말 멋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후의 영화 <바이스 (2018)> 또한 경제에서 정치로 옮겨와 실존하는 미국의 정치인을 가지고 뛰어난 풍자 영화를 만들어 낸 아담 맥케이다. 그가 이번엔 혜성의 지구 충돌을 가지고 돌아왔다.


<돈 룩 업 (2021)>의 흔하지 않은 인물 설정,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만드는 마치 상황극과 같은 의도한 오버스러움, 동시에 결코 가볍지 않은 시대를 비꼬는 본질은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좋은 노래, 영상미, 심지어 예쁜 글씨체까지 더해져 오랜만에 보는 내내 즐거웠던 영화였다. 동시에 여러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산만함 없이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부터 조연 티모시 샬라메까지 모든 배역이 이야기의 적재적소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엄마밖에 모르는 비서실장 제이슨을 연기한 조나 힐과 TV쇼 메인 MC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빛났다.


영화 <돈 룩 업>을 보고 전체적인 생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풍자와 이상한 인용


교수 랜달 민디와 박사 수료생 케이트 디비아스키

풍자는 쉽지 않다. 사건이나 현상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는 한 모든 경우에는 대중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특정 의견을 희화화하면 역으로 공격을 당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자를 쓸 땐 신중하며 한 번에 알아듣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농담인 듯, 비꼬는 듯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며 말을 뱉기 때문이다. <돈 룩 업>은 풍자로 점철된 영화다. 지구로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혜성이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는 커다란 시한부 같은 상황 설정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인류의 이해관계를 풍자하며 끝내버린다.


감독 아담 맥케이는 <빅 쇼트>에서 제라드 바넷이 큰돈을 벌 시점 앞에 '카이사르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자 눈물을 흘렸다.'라는 어구를 사용하며, 대사와 상황을 대신한다. 영화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출처 모를 말들과 비속어가 섞인 어딘가 이상한 인용들은 기가 막히게 영화 내의 상황과 들어맞는다. 그는 <돈 룩 업> 또한 '나는 할아버지처럼 편하게 죽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I. 정치


백악관 혜성 브리핑

민디 교수와 디비아스키는 혜성의 충돌로 인한 인류의 멸종을 보고하고 함께 논해보기 위해 백악관으로 간다. 대통령을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하여 신경 안정제를 달고 살고, 압박감에 구토를 하던 그들의 우려는 과했다. 대통령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흔하디 흔한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대법관 인사 이슈와 중간 선거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을 생각하는 행위는 그에게 있어 투표 다음의 일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는 이게 문제다. 인간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정계는 온통 탐욕과 썩은 야망으로 가득 찬다. 진심으로 국가 운영을 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주변이 온통 파리떼이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파리떼가 되거나 그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뿐이다. 이는 선진국, 후진국에 관련 없이 정치가 있는 곳에서는 거의 대부분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게 표 계산이고, 왕좌에 하루라도 더 앉아있으려 하는 심보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상적인 정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자본주의와 자유 (1962)>에서 말했듯, 정부는 결코 개인행동의 각양각색과 다양성을 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선에 닿을 수 있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II. 인사


그들만의 세상으로 꾸려진 참모진

나는 정치 시사 뉴스를 자주 보며 혼자 답답함을 자주 느끼곤 하는데, 그중 가장 빈번한 한탄은 인사에 관련된 것이다. 사람을 기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어느 누구도 여러 분야에 전문적이기 쉽지 않다. 특히 모든 분야가 전문화되고 복잡해진 만큼, 한 분야에 전문적인 사람은 더욱 찾기 힘들며 그만큼 신중하게 찾아야 한다. 국가수반은 각각의 분야에 가장 뛰어난 해결 능력을 보여주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 각각의 자리에 앉혀주는 일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본다.


<돈 룩 업> 속 미국의 대통령은 역시 이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다. 처음 혜성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던 초기에 민디 교수와 그의 제자가 백악관에 찾아왔을 때,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말에 그들을 무시하기 시작하고, 이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전문가에 조언을 구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가장 잘 알고 있고 그것만 생각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다음은 기회를 주고 잠시만 기다리면 된다. 영화 속 대통령은 두 과학자를 신뢰하지 않았고 돈만 생각하는 기업 '배시'의 CEO에게 사실상 전권을 넘긴다. 이는 결국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결말을 가져온다. 아이작 뉴턴은 그의 이론을 밝힌 뒤, 어떻게 그것을 알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뉴턴은 이렇게 답했다.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III. 언론


TV쇼 <The daily rip>의 진행자 브리와 잭

언론은 상당히 매력적인 위치에 있는 기관이다. 사실상 권력이 가장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무분별한 확장에 따라 대중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좋으나 싫으나 널리 알리고 부패를 폭로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이용한다. 소식을 접한 대중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정치권력은 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기자의 펜이 체제를 전복시킨 경우도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언론 또한 부패되기 쉬운 위치에 있다. 대중의 입과 귀가 되는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권력이 언론에 뇌물 등으로 그들을 장악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 국가에서의 언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황색언론 (Yellow Journalism)'의 문제가 최근 들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전향해 돈만 밝히는 단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인터넷 보급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제 특정 메이저 언론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카메라와 글을 쓸 수 있는 기기가 있기 때문에, 언론은 다른 생존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클릭 베이트 (Click Bait)'라고 일컬어지는 선정적이고 사실보다 훨씬 부풀어진 기사로 조회수를 늘려 광고 수익을 확대하는 방법은 언론의 전문성과 진지함에 하락을 가져왔다.


아담 맥케이는 이 또한 꼬집고 있다. 유명 TV쇼 프로그램 <The daily rip>과 일간지 해럴드는 문제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학자가 나와서 혜성의 충돌을 설명하고,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첨언해야 하는 전문적인 이야기들은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어떻게든 사람들이 많이 보게 한 뒤 수익을 내야 한다. 재미 전달에 빠진 언론 또한 혜성 충돌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두 과학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IV. 대중


대중의 관심은 따분한 과학 이야기가 아니라 두 가수의 연애에 있다

'스낵 컬처 (Snack Culture)'는 대중이 가볍고 얕게 문화를 향유하고 금방 싫증을 내며 다른 이슈를 고파하는 현상이다. 사회적으로 혹은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뤄봐야 할 문제들은 지겹고 따분하기 때문에 이들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 마냥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높은 시기이다.


<돈 룩 업>은 이 부분을 풍자하고 있는데, 미디어를 접하는 사람들은 혜성 충돌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려버리며 인기 가수 라일리 바나와 DJ 첼로의 이별과 재결합에 큰 호응을 보낸다. 후자가 더 재밌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다가올 종말도 모른 채 오늘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 대중의 유행은 재난을 피할 수 없도록 하는 큰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정계와 언론계가 비교적 높은 위치에서 혜성에 대한 대응을 엉망으로 해나 갈 때, 대중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언론, 대중의 반응이 너무 답답했던 디비아스키는 방송 중 분개하며 본질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불특정 다수에 소리를 치지만, 이는 단지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찰스 맨슨과 합성된 사진 등 '밈 (Meme)'화 될 뿐이다. 극은 점입가경으로 민디 교수의 프로그램 진행자 브리와의 불륜으로 이어지며, 결국 그 또한 '가벼운'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지금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모두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


V. 이데올로기


결국은 이념적 대립

과거에는 이데올로기가 현재보다 단순했다. 이쪽 편 아니면 저쪽 편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쉽게 나뉘는 시대였던 것이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전체주의보다 개인주의가 어울리는 시대이며, 개개인의 정신적 성숙이 과거보다 높아진 지금은 개개인이 생각하는 '올바름 (Correctness)'에 대한 기준과 방향이 제각각이다. 누구는 특정 가치를 다른 가치보다 우선순위에 두기도 하며, 누구는 그러한 가치를 강요하지 말라며 대립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이는 종말의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크게 두 개의 진영으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Look Up'이고 다른 하나는 'Don't Look Up'이다. 혜성이 다가오는 걸 보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메시지 'Look Up'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끝을 준비한다. 돈과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마지막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사랑 속에서 끝을 맞이하는 것이다. 반대로 'Don't Look Up'은 결국 부와 권위를 유지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메시지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늘을 보라고 설교하는 자들의 대척점에 있으려 하는 것이다. 수많은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저들이 싫은 사람들은 여기로 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인류는 마지막까지 서로의 주장이 옳다며 분열되고 종말을 맞이한다고 아담 맥케이는 말하고 있다.


VI. 만인의 영웅


하나의 캐릭터에 불과한 드래스크

미국의 국가적 사상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소위 영웅주의가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역사적으로 항상 국가적 위기 상황에는 영웅이 등장했다. 실제 갈등을 봉합하고 위기를 앞장서 해결한 영웅이 있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목적으로 대중을 홀리기 위해 설정된 영웅도 여럿 존재한다. 결국 하나의 상징이 필요한 것이다. <돈 룩 업> 속 미국의 가상 대통령 또한 디비아스키 혜성의 충돌을 목숨 바쳐 막아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려 했으며, 정치적 위기를 겪으며 권력에서 멀어질 처지에 놓은 드래스크를 대장으로 임명해 대중 앞에 내세운다.


드래스크는 영웅이 되기에 전혀 적절하지 않은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혜성을 우주에서 폭파시키려 탑승한 우주선에서 교신을 통해 수준 낮은 말들을 쏟아낸다. 그는 미국의 뿌리 깊은 사상인 백인 남성 중심주의를 고수하는 인물이었음에도 대통령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영웅의 등장을 알린다.


VII. 돈


무능의 끝, 대통령 아들 제이슨

인류 종말이라는 결말을 가진 재앙을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의 선택권을 가진 자들은 결국은 또다시 돈이었다. 혜성에는 14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광석이 발견되었으며, 중국보다 빨리 그 광석을 손에 넣는 것이 이들의 최우선 목표였다. '혜성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캐치프라이즈 아래 돈에 혈안이 되어간다. 과학자들이 국민의 생명과 인류의 미래 등을 논하며 정부에 선택과 움직임을 요구할 때에는 검토한다며 시간만 보내던 그들이 '돈'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결국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늘 그렇듯 피해는 다수의 몫이고 상위 계급에 있는 자들은 알아서 살아남을 방법을 만들어뒀다. 다른 행성으로 소수의 부와 권위를 지닌 자들이 피난을 가 살아남는다는 아담 맥케이의 풍자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물론 이렇게만 끝났다면 흥미 요소가 좀 떨어지는 영화였을 수도 있다. 애매하게 사회 비판만 늘어놓는 영화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뻔한 전개와는 다르게 감독은 끝내 피신하지 못한 마마보이 제이슨과 새로 찾은 행성에서 괴생명체에 잡아먹히는 비겁한 자들을 보여주며 영화를 끝낸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뭐할래?'라고 묻듯이 말이다.


아이작 뉴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 못 하겠다.

<돈 룩 업>이 그린 현대에서의 종말


<Don't Look Up>

다양한 생각이 통용되는 시대이고, 그 생각을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런 만큼 장점도 있지만 각자가 자기 말만 하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말하며 본인만의 프레임에 갇히기도 쉬운 시대이다. 죄다 자기 말만 하기 바쁘고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내 생각만 설득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흐름을 아담 맥케이는 꼬집는 듯하다. 정치에서, 언론에서, 허울뿐인 능력주의에서, 가벼운 대중 사이에서, 가정을 쉽게 포기하는 개인에서, 여러 요소를 건드리며 이렇게 우린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하는 그의 메시지는 수준 높은 풍자를 보여주었다.


'우린 이렇게 죽고 말 거야!' 아담 맥케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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