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kye Apr 05. 2022

Dr. Kim이 된 날

지난 몇 년간 나는 어쩌면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어느 것에도 뜨거워지지 않는 마음, 감동도 화도 기쁨도 슬픔도 없이 그냥 늘 많이 지치고 조금 쓸쓸한 기분. 그저 앞에 주어진 해야 할 일을 겨우 아등바등 해치워나가는 일상들.


지난 5년을 마무리하는 박사 디펜스를 준비하면서 나는 더 메마르고 날카로워졌다. 5년 전 박사 생활을 시작할 때 그렸던 것과는 차이가 있는, 아직도 너무 나약하고 부족한 내 모습. 발걸음을 떼려고 안간힘을 써도 더욱 깊숙이 빠지는 갯벌이나 수렁 같은 곳에 갇힌 느낌. 게다가 그 끝이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푹 잠겨버리는 것이 현명한 건 아닐지 고민한 날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나는 디펜스를 무사히 마쳤다. 기대보다 더 많이 따뜻한 눈길들로 무사히 나의 앞날을 축하해주시는 모습들, 그리고 굳이 시간을 내어 내 5년의 마무리를 축하해준 사람들. 밤 시간인 홍콩에서 시간을 내어 Zoom에 들어와 준 친구. 전날 밤 슬라이드를 큰 의미 없이 조금씩 고쳐보며 30분 남짓 눈을 붙였던 게 무색하게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축하 메시지들을 잔뜩 받고, 링크드인에 모처럼 소식을 올려보고, 라넌큘러스를 네 다발 사서 다듬어 꽂고, Tax filing을 안 한 게 생각나 급하게 우체국에 부치고 돌아와 피곤해 살짝 낮잠을 자고, 앞집 고양이랑 놀아주고 간식도 좀 주고 해가 조금 지려는 저녁이 되었는데...


정말 황당하게도 디펜스를 마친 직후도 아닌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지독했던 5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끝이 이렇게 아름답고 허무해서 또 눈물이 더 났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뜨거운 기분은 사실 내 안에 숨어있었나 보다. 떨어지는 자신감과 지독한 불안감, 그리고 엄청난 부담감 앞에서 잠깐 나는 기쁘고 슬퍼하는 법을 억지로 잊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나는 눈물이 우습고도 기특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더 이상 학생이 아닌 마침내 교수로 나는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것이다. 그곳에서 또 다른 고난이 있을 건 분명하다. 그 앞에서 충분히 강하고 지혜로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내가 좀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마음껏 느끼고 드러내기를 기도한다. 우는 법조차 잊었던 지난 몇 년의 내가 나는 너무 아프고 애틋하다.

작가의 이전글 잡 인터뷰를 앞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