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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Dec 13. 2022

2022년 12월

아버지의 해방일지 


우풍이 무지하게 센 시골 집 

작은 방에서 울음이 새어 나온다.


'끅끅, 끅끅.'

잘은 모르지만 아빠는 엄마와 이혼이란 걸 한다고 

법원에 간다고 했었다.


여섯 살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야, 오늘 우리 엄마아빠 법원 간다~!

뭐 어디 좋은 곳인 줄 알았나 보다.


그 날 밤,

요강에 오줌을 누러 

서늘한 거실에 나갔을 때

끅끅 거리며 

가슴을 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안방에 할매 할부지 곁에 들어와 누웠는데 

할매도 고개를 돌려 운다.



그래도 자다가 작은 방에 건너가 

아빠 품에 안기면 

아빠는 참 따스히 나를 안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생모는 그랬었다.

너는 아빠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항상 싸워도 너는 아빠 편을 들었었다고.


난 작은 방에 

새벽에 오줌누러 나왔다 

아빠에게 총총 걸어가 안기는 게 참 좋았다.



그랬던 아빠는 갑자기 결혼이란 걸 또 한단다.

이모할매의 소개로 좋은 분을 만나 

결혼식 하던 날 

언니와 나를 그 시골집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어느 시골 교회에서 결혼을 또 했단다. 


살림집을 다른 곳에서 해야 한단다.

언니와 나는 두고 

신혼 살림을 살러 나갔다. 


자다 깨 안길 아빠가 없다.

애꿎은 할매 등뒤만 만지작 거리다 잠이 들었다. 



새엄마랑 같이 살아야 교육에 좋지 않겠냐며 

언니와 나를 데려 갔다. 


더이상 아빠는 

내가 알던 그 아빠가 아니다.



내가 달려가 안길 수도 없고 

새엄마의 비위와 눈치를 맞춰야 하는. 

 

낯선 환경에서 

각자 적응해야만 했고 

각자 살길을 알아서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이 집을 독립할 날만 꿈꾸며 

악착같이 버티고 살고 있었는데 


대학 발표 날, 

아빠는 직장 동료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 뭐 어디 똥찌그리한 데 갔지 뭐."



한 마디로 끝나 버렸다. 

나의 존재는 그저 똥찌그리한 존재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 것이었던 아빠였는데 

어느새 더없이 낯선 아빠가 뱉은 그 말은 

아직도 나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다.


"똥찌그리한.."



그렇게 나는 똥찌그리한 학교에 들어가 

임고도 보란듯이 낙방하고 

결혼하며 친정과 인연을 끊다 시피 하며 살아 왔었다. 



그러다 바로 밑 동생이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아빠가 퇴직금 어디다 떼 먹고 

지금 엄마랑 이혼한다고 난리야..."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난생 처음으로 속을 비추었다.


"내가, 아빠 때문에.

아빠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이혼 가정이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또 이혼해요?

내가 대체 뭐 어떻게 살길 원하세요!"


아빠는 그 특유의 무심함으로 

허허, 웃으며 넘겼다. 



다음 날, 새엄마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야이. 어제 니 아빠. 뭔 일이 있었는지 

침대에서 식은 땀 흘리민스 하루종일 누워 있드라."



아, 

나는 하고싶은 말도 못한다. 


어설프게 착해빠진 년, 


풀지 못한 실타래를 

아직도 마음에 이고지고 살아가며

친정집을 갈 엄두가 안 나는데 



남편이 사다 준 책을 읽고 

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모르겠다. 

그냥 읽어 내려 가는데  눈물이 났다. 



아, 정말 모르겠어서 

소리내 울었다. 


이건 어떻게 해야할 지 나도 모르겠다. 


내가 받았던 상처보다

아빠라는 그 사람이 걸어왔던 길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의 인생도 결코 녹록치 않았겠구나,

그의 인생도 

결코 호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그냥 내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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