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두 번째 힘을 빼야 할 때"

by evergreen

"2021년 9월에 오셨었고 22년 3월까지 다니셨었네요.

안 보고 살면 좋은데 오늘 또 오셨네요."

"아, 네. 제가요. 생리전 증후군이 심해서 다시 왔어요."

"네, 어떤 증상이시지요?"

"음, 생리전만 되면 두통도 심하구요,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구요, ....."

한참을 듣고 있던 의사선생님께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신다.


이건 생리전 증후군이 아닌 듯 하고 검사지 2개만 하고 오자 하셔서

의자에 앉아 간이 책상에서 검사지를 하는데 뭐가 다 내 얘기 같지,

'매우 그렇다'에 체크한 것만 수두룩 빽빽,


검사지를 다 채우고 대기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20대 앳된 여학생이 조용히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온다.

저 착한 사람이, 주변을 다 맞춰주다 속병이 생긴걸까,

애처로운 마음에

조용히 기도를 읊조린다.

몸이 아파 깁스를 한 어른들이 마음도 병이 들었는지 줄줄이 들어온다.

아픈 사람이 참 많구나. 하긴 여긴 병원이지.


"자. 우울증 수치가 높습니다. 불안증세도 여전히 높으시네요."

그럴 줄 알았다. 생리전 증후군은 남편에게 안심시키려고 떠들어 온 병명이고

사실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았다.


과외 아이들 완벽하게 성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과

두 아이들이 커가면서 세상에서 겪어 내야만 하는 일에

감정 분리가 되질 않아

마치 내가 겪는 인생의 시련처럼 감정이 투영이 되

'앞으로 내가 살 날에 재미있는 날이 오기는 올까?'를 곱씹던 요즈음,

괜찮을 리가 없지.



투박한 경상도 선생님이 말씀을 이어가신다.

"40대에 필요한게 뭔지 아세요?"

"음...... 선택적 집중?"

"뭐 같은 맥락이긴 한데. e 씨 같은 경우에는 완벽주의가 강하고 예민해서 일할때는 좋죠.

그리고 30대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았을 거고.

근데 40대부터는 '포기할 건 포기!' 하셔야 합니다.


남편이 속 이야기를 안 들어주고 감정을 차단해요? 포기해요.

이나이에 이혼해서 재산소송하고 자녀 양육 싸움하면 그게 더 견디기 힘들걸요.

자식? 내맘대로 안됩니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렇게 살아야 되요."



3년 전에도 투박한 위로를 건네던 그가

또 내게 투박한, 내가 받고싶은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살아야지요. 안 그래요?"


약은 여전히 최소 복용량으로 지어주셨고 나는 담담하게 병원을 나섰다.

3년 전 병원을 나설 땐,

'나도 엄마 팔자를 닮았다'며 30년 전부터 묵혀 왔던 울음을 터뜨렸다면

오늘은 되려 마음이 편안했다.


어제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내일 병원엘 가거든? 근데 요즘 내가 아무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아.

그러니 시어머니께도 내 상황을 말씀 드리고 전화를 하지 말아달라고 고모가 말을 잘 해줘."

라고 애둘러 이야기 하니 시누가 알아듣고는 아무 걱정 말라며,

결혼하고 지금까지 시어머니가 그래도 많이 변했지 않냐며

그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이 위안을 준다.


나는 이번 진료를 통해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지 않을 공식적인 기회를 얻었고,

남편과 자식들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일에 대해

'포기' 하는 방법을

알약 한알과 함께 배워나갈 것이다.



다니고 있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4년동안 나는 예배만 드리고 조용히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그러다 1년 전,

목사님이 설교 중에 꺼이꺼이 우시는게 아닌가-

"말씀으로 돌아오세요..." 하고

훤칠한 목사님이 절규하는데 내가 이 믿음의 사람을 시험들게 하는 건가,

개척 교회 목사님이 얼마나 힘이 들면 예배중에 저토록 목놓아 우는 걸까 싶어

그 다음주부터 식사당번에 자원을 했고

어색하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콩나물 밥을 함께 먹었다.


그렇게 용기를 냈고

3개월 전부터는 목장 모임엘 나가기 시작했다.

말씀으로 어떻게 살아냈냐고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데

나만 울었다.


첫 주에는 '나만 이 집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내는 것이 너무 힘에 부친다.' 며 분위기 흐리며

눈물을 흘려댔고

둘째주에는 '아니다. 주님이 내게 책을 통해 말씀하셔서 다시 회복하고 살아냈다' 며 영웅담을 풀어놓고

그 다음주에는 또 훌쩍이길 반복하던 상황에

하나님께서 또 이 타이밍을 쓰시는 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처음 이 작은 개척교회로 옮겨서 제자훈련을 했을 때

2주차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기'에서 과호흡이 와

내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영혼이 탈탈 털렸었는데


목장 모임을 함께 하면서 또 병원을 찾게 하신걸 보면

또 무언가 내게 단디 벼르고 계신게 있나보다.


약봉지를 가방에 넣고 병원을 나서 걷는데

'내힘으로 안해도 되고 좋다'라는 생각에

신바람이 난다.


이제 내 힘으로 과외 일 안해도 되고,

이제 내 힘으로 이 가정 안 꾸려도 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걸 다 내어 드리면서 나는 좀 쉬어도 되겠지?

흥얼 거리며 집까지 운전해 오는데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안'인가 싶어 웃음이 난다.



이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힘도 여력도 없고

주님께서 이끌어가실 나의 모든 호흡과, 순간들과, 일들이 잔뜩 기대가 된다.


수업을 다 끝내고 정리를 하는데

질문을 한다는 핑계로

한 아이가 남는다.


"나는 네가 수학 학원을 마치고 곧장 영어수업을 와서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해.

인지적으로도 너무 부담될것 같고 많이 지치지,"

한마디에

냉철해 보이던 아이의 눈가가 빨개진다.


잊고 있었네,

나는 아이들이 참 좋은데-

그들과 함께 '울 수 있는 선생님' 이 되고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결과만 만들어내는 선생님으로 살고 있었구나,


아이의 속이야기를 듣는데

과외 모든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그간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


다시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자리로 나아간다.


처음 과호흡이 오기 전 날,

순대국밥 집에서 정신없이 밥을 먹던 남편을 바라보는데

그때 들렸던 말씀이

오늘 또 들린다.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실

하나님 만 나는 의지합니다.



25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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