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by evergreen

일곱살 아이가 저녁밥을 일찍 먹고 안방 불을 끄고서 엎드린 채로 티비를 본다. 할아버지는 이미 술에 취해 주무시고 할머니도 늘 그렇듯 불안함때문에 깊게 주무시지 못하고 자다깨다를 반복하고 언니와 나는 조심히 티비를 본다.

"저, 여기 @@@ 선생님 댁 맞습니까?"

낯선 남자가 들어와 아빠를 찾는다. 선잠을 주무시던 할머니가 일어나서 누구냐 채근하니 택시기사인데 밖에 어떤 여자가 그 선생님을 찾는단다. 항상 벌벌떠는 할머니가 밖에 나가보니 엄마가 와 있었나보다.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동네 어른들이 우르르 나와 상황을 살핀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엄마는 그 동네에서 '쫓아내야 할 악인'이 되어 있었던 걸까, 합심하여 어른들이 몰아내려 한다.

"이미 재혼을 했는데 다시 찾아와 뭘 한단 말인가, 돌아가야지."

악다구니를 쓰는 엄마의 소리가 들린다.

"아들 다 듣는구만, JJ 엄마, 어여 돌아가. 어이? 아들 다 듣는구만 다시 돌아가."


그 와중에 풍채 좋은 할머니가 들어와 "너네 밥은 먹었냐"며 물어보신다. 분명 밥을 먹었다고 말씀 드렸지만 우리의 말이 귀에 안 들리시는지 "야이, 라면이라도 끼리 먹이야지. " 하며 그 와중에 라면을 끓여 방에 들고 오셨다.

마음이 허한 아이들 밥이라도 든든히 먹이려는 어른의 마음이셨는지 굳이 한술 뜨는 모습까지 보려 기다리신다. 언니와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라면을 한젓가락 먹는다.


"우째 됐어, 애들 라면은 미깄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떤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 들어서는지 "보냈어. 택시비도 다 내서 다시 집으로 보냈어." 하며 들어오신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보고싶던 엄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 버린 채,

33년이 흘렀다.


그날 아침 국민학교를 가던 길, 유독 머리맡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시끄럽게 울던 날,

나는 엄마를 영영 놓쳐버렸다.


그날 억지로 먹은 라면 덕에 급체를 해 시름시름 앓느라 살이 빠졌는데

아무래도 돌이켜보면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는 슬픔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나이였을 그때의 엄마를,

어찌할 도리 없이 정신이 여러길로 갈라져 본인도 주체할 수 없었을 그 여린 여인을,

다시 돌아가 꼬옥 안아줄 수만 있다면,

저 안에 당신의 두 딸이 당신을 보고싶어한다고

손을 꼬옥 잡고 어깨를 둘러 안아 집안으로 들어가

얼굴을 온전히 마주하고 온기를 나누었다면

당신의 병이 더 악화되지도 않고

지금 쇠창살이 있는 병원에 있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아등바등 하는 요즘,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매일 매일 그 감정들과 싸우는 와중에

그시절의 당신이 유독 애달픈 이유는 무엇일까,



리어카를 갖고 놀다 손잡이 부분에 입술을 부딪쳐 피가 나던 서너살,

나를 품에 꼬옥 안아주던 그 모습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기억 하나 붙잡고 지금을 살아내기란 힘에부친다.


뜨겁게 사랑받아본 기억은 드문데

뜨겁게 사랑을 퍼 주어야만 하는 요즘의 상황이

조금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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