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에 겉옷을 챙기게 되었다.>

by 마형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 했던가. 낮과 밤의 시간이 같아진다는 ‘춘분’을 지나 낮이 더 길어지고 있어도 밤공기는 제법 쌀쌀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와 같이 텅 비어있는 시간들을 애써 지우려 밤 산책을 나왔다. 이 시간에 집 앞 둔치를 따라 걷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자녀들과 산책을 나온 사람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힘차게 뛰는 사람들, 나처럼 강아지와 함께 시원한 밤공기를 즐기는 사람들. 나와 한 공간에 있는 이 사람들에 호기심이 생긴다. 내가 이 산책로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이유가 있다. 숨 막히는 수험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나의 숨통을 트여주던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나는, 이 산책로가, 이 공기가 참 좋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내일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부디 큰 걱정, 고민거리는 없기를 소망해 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강아지가 짖는 소리에 곧바로 눈을 돌린 곳에는 불청객이 찾아와 있었다. 물뱀 세 마리가 수풀에서 나와 하천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짖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뱀은 반응하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짖는 소리에 반응하여 강아지가 물렸다면 나를 지켜주려 안간힘을 쓰던 강아지를 조금은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마쳤다.




자려고 누웠는데 아까 보았던 흐물거리는 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동시에 뱀의 머리가 내 머릿속 호기심 상자에 '똑똑똑' 노크를 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에 재빨리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유튜브에 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물뱀은 보통 독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겁을 먹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조금 머쓱한 기분도 들었다. 머리가 두 개 있는 쌍두사는 0.5%의 확률을 뚫고 태어난 돌연변이라는 사실과 뇌까지 두 개인 탓에 서로 사고를 달리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상위 포식자를 만난 급박한 상황에서조차 사고를 달리하기 때문에 자연에서 생존하기에 극도로 불리하다고 한다. ‘사공이 고작 둘 밖에 안되어도 배는 산으로 갈 수 있겠구나.’싶었다. 난생처음 보는 뱀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 들고 있던 휴대폰을 몇 번이고 얼굴에 떨어뜨리면서도 계속 봤다. 이제 그만 자야 하는데……




창문을 열고 이불을 덮지 않은 채로 누워있던 탓인지 배가 살살 아파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 위에 앉는데 ‘스윽’하는 소리가 나서 조심스레 옆을 살피니 뱀 세 마리가 벽을 기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새벽이라는 것도 잊은 채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할머니께서 거실로 나오셨다. 화장실에 뱀이 있다는 얘기에 막대기를 찾으셨다. 나는 들어가지 말라고 한사코 말렸지만 할머니는 기어코 화장실로 들어가 뱀을 잡으셨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짜증, 걱정, 고마움? 모든 게 섞여 있었겠지만 저열한 내가 선택한 감정은 짜증이었다. 짜증이 나다 못해 골이 아파질 찰나에 잠에서 깼다. 어...? 모든 게 꿈이었다. 화장실의 뱀도, 뱀을 잡던 할머니의 모습도, 짜증을 내던 나의 모습조차도. 다시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드넓게 펼쳐진 검은 도화지 위에 할머니의 모습을 한참이나 그리다 잠에 들었다.




늦게 잠에 들고 밤잠까지 설친 탓에 해가 산 중턱에 걸치고 나서야 일어났다. 할머니가 꿈에 나오셔서 오늘은 할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다. 준비를 하고 할머니께 향하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비록 꿈에서였지만 짜증을 낸 것이 죄송스러웠다. 꿈이 아닌 현실의 나는 짜증을 내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어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이럴 때 소주 한 병과 꽃 한 송이를 사 가고는 하던데 어른들의 ‘그것’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런 겉치레는 생략했다.





할머니를 뵙고 오니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누워서 영화를 볼지, 산책을 다녀올지 생각을 하다 오늘도 역시 날씨가 좋으니 산책을 가기로 결정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그래도 반팔 차람이 편할 듯싶었다.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는데 어젯밤 꿈속에서 뱀을 잡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 너머로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시며 나를 금지옥엽으로 키워주시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이른 새벽이면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항상 내 방에 들어와 창문이 열려있는지 확인하시던, 하늘의 별이 되어 여전히 나를 비춰주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밤 산책에 겉옷을 챙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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