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빠 안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용 Sep 29. 2023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마라

1. 아빠 안녕! - 죽음 이후의 배려

2020년 설 제사를 마무리한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나 죽으면 더 이상 제사 지내지 마라"


나는 아버지의 말에 놀랐다. 뜻밖의 말일뿐더러 40년 넘게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지낸 엄마가 듣고 서운할까 싶었고, 아버지도 진심이 아니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은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말은 전혀 안 하던 아버지였기에 더욱 그랬다. 항상 매사에 꼼꼼함과 완벽주의였기에 그 말은 왜 했는지 더욱 의문이었다.


의문이 서서히 잊혀갈 시점, 2023년 4월 아버지는 급작스러운 폐암으로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난 후 엄마와 누나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누나와 엄마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생각을 거듭했다.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츤데레면서 남에게 피해 주는 것에 극도로 싫어했던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제사가 아들에게 혹여 고민스러울까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을 테니 미리 선수 쳐서 말해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허례허식을 매우 싫어했다. 허례허식을 싫어하는데 40년 제사를 지내면서 어느 순간 허무했는지도 모른다. 제사 지내지 말라는 말을 했을 때를 더듬어보면 아버지의 표정은 의미나 가치를 잃어버린 표정이었다. 지극정성으로 효를 다했고, 찢어질 듯한 가난을 이겨냈지만 아버지의 동생들로부터 받은 배신만 남았으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제사는 무쓸모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엄마와 누나는 아버지 제사를 안 지내는 것이 허전했던 모양이다. 절에서 제사를 대신해 주는 것을 하기로 했다. 선뜻 그러라고 했지만 나는 사실 조금은 꺼림칙했다. 36살, 아들까지 있는 어른임에도 마음으로는 아직 아버지에게 위로받고 싶은 어린 아들에 나는 불과했기 때문일까. 정확히는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기도 어렵고,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49제까지 치른 이 마당에 왜 그러나 싶지만 아버지와 너무 급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아버지 죽음에 마음속 기둥들이 모두 무너져버렸다. 무너진 마음에 아버지 제사라니 아버지를 마음속에서마저 보내야 할 거 같은 기분이다.


저마다 이별을 대하는 방식이 있다. 나는 제사를 지내면 죽음을 너무나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빠르게 인정해야 하는 의무감이 들 것 같다. 철부지 아들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언제든 아버지를 묻은 장지에 가면 비석에 그려 넣은 환한 아버지의 미소를 통해 나는 위로받는 기분이다. 제사를 지내면 아버지가 세상에 더 없어 위로받지 못할까 싶은 두려움이 다. 그래서 성묘는 괜찮지만 제사는 꺼려진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마음마저 미리 알고, 그렇게 말했나 싶을 때도 있다.


나는 누나와 엄마에게 다른 이유를 대며 절에서 지내는 제사에 불참을 선언했다. 다행히 유일하게 내 마음을 읽은 아내는 위로했고  엄마나 누나도 참여해라 마라 말하지 않았다. 성묘로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만 전달해야겠다. 그리고 아버지 성묘를 가서 약주 한잔 올리며 아버지의 죽음 이후까지 생각한 배려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야겠다. 그리고 부디 거기선 우리 걱정, 배려하지 마시라 해야겠다. 마음 편히 하고 싶은 것 하시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