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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흑자 전환 프로젝트 2

11. 상품 관리 - 머니볼, 그리고 인식 개선하기

by 임용

회사는 첫 해 -50억을 기록했다. 손익 지표를 보여줬지만 중간급들의 손익에 대한 인식 부족은 여전했다. 적자를 흑자로 개선시키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상품 담당자는 보유 재고나 자신의 매출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영업 담당자는 매출과 비용에 민감했으나 구조를 몰랐다. 이러한 회사 사정에 불안감이 높아졌다. 존립 자체가 걱정이었고, 손익을 개선하는 과정 속에서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불안과 싸우다 지친 날이면 집에서 나는 머니볼이라는 영화와 책을 봤다. 머니볼이라는 영화 속 인물이 처한 상황,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손익을 바꾸기를 위한 사전단계 - 새로운 동력 확보

머니볼 영화의 주인공(야구단 단장)은 우연히 새로운 시각을 갖춘 다른 구단의 직원을 만난다. 그리고 그를 부단장으로 임명하며 야구단의 새로운 혁신 동력으로 삼는다.

다행히 새로운 경영진은 머니볼의 주인공과 비슷한 결정을 했다. 경영진은 혁신의 동력으로 나와 동기들을 선택했다. 경영진은 중간급을 압박하기보다는 잘하는 일에 집중하기를 권했다. 장표를 만든 나와 동기들은 손익을 이해하고 현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도 회사 및 중간급들의 업무를 지원했다. 경력직 중간급들의 업무 역량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회사의 사정을 낱낱이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이었다.

또한 경영진은 중간급을 견제할 수 있게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했다. 중간급들은 자신의 의도대로 회사를 이끌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일관성이나 안정성에서 떨어지는 판단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욕심까지 반영되었기에 좋은 방향이 될 수도 없었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업무를 자세히 알고 있는 나와 동기들에게 수평문화를 통해 부여한 것이다.


새로운 동력으로 균형이 생기자 바뀌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매출액을 높이고, 비용은 감소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자 초반에 중간급들은 반발이 거셌다. 비용을 줄이면 협력업체의 생존 위기이면서, 동시에 매출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 제시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손익 지표로 현실을 깨닫게 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만들어지자 중간층은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중간층은 자발적으로 가장 먼저 많은 매출은 크게 높이면서 비용 금액 대신 매출액 대비 비용률을 낮추는 방법을 선택했다.

먼저,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여, 매출을 높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였고, 기존보다 평균 매출액은 높였다. 그리고 신규 거래처를 지속적으로 개척했다. 연간 9억이었던 한 유통채널은 3년 후 100억대가 되어갈 정도로 커졌다. 또한 매출 규모가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원가나 비용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추가적인 손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기타 판매에 필요한 비용은 매출액 대비하여 연간 1~2%p씩 줄였다. 비용이 매출로 인식되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반갑지는 않은 결정이었다.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매출액 대비 비용의 % 는 줄었지만 절대적인 금액은 줄지 않도록 장시간 조절했다. 그러자 협력업체의 큰 이탈은 없었고, 매출은 높이면서 비용은 줄일 수 있었다. 그러자 매출 대비 비용률은 40%대에서 30% 초반으로 상당히 줄어들었다.


성적이 변하자 혁신은 전염됐고 발전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실적은 개선되었다. 머니볼에서 잇따른 경기에서 연승이 지속되자 감독과 언론의 태도가 달라진 것처럼 내가 속한 곳도 내부와 외부의 시각이 바뀌었다. 내부적으로는 실적이 개선되며 차장들도 손익 인식이 개선됐다. 세밀한 사항까지 분석해 마이크로 개선을 하거나,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바꾸기 위한 조치들이 들어갔다. 외부에서도 꽤 빠른 성장에 시기심도 있었고, 경이로워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회사 초반 무시당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나는 그 과정에서 영업전략과 기획을 맡아 매출과 판매비용에 가장 중심에 있었다. 전략과 기획을 위해 영업 관리 관련 지표들을 고도화했다. 단순 입점률을 넘어 입점 회전율, 프로모션 투자 효용성 지표, 상품별 포트폴리오 적정 비율 등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표를 추적 관리하며 이상적인 매출과 비용의 균형점을 찾고, 이를 달성하고자 했다.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며 회사의 중간급들은 손익에 완전히 적응했다. 매년 사업계획 작성 시 비용 줄이는 것에 대한 반발감도 줄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손익을 개선하는지 본인들도 깨닫고, 무엇을 추진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나서기 시작했다.


홈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더 강해졌다

첫 손익지표를 만든 지 약 4년이 지나 첫 흑자 3억을 달성했다.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는 그 과정에서 회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유명한 경영 컨설팅업체의 보고서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승리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물론 첫 흑자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머니볼의 주인공(빌리 빈)처럼 나도, 동기들도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는 모른다. 엄청난 영업이익을 만들어낸 기업들도 많고, 당연히 기업이라면 해야 하는 것들을 했으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고통은 인내한 대가는 있었다. 4년간 누적 적자 100억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회사와 경영의 구조, 혁신의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혁신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인식 개선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며, 적자를 흑자로 만들며 겪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함을 배웠다. 흑자로 전환되었지만 아직 산적한 문제들도 엄청나다. 더구나 아직 TV에 나올 만큼 엄청난 혁신도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과제, 그리고 혁신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적어도 두려움은 없다. 그 이유는 혁신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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