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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Mar 31. 2016

글1

얼마 전 instagram을 삭제했다. 올린 사진들이 이제는 나에 관한 기록이 된 것 같아서 계정은 그대로 두고 어플만 삭제했다. 캐나다에 온 뒤로 줄곧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처음 그것을 느낀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다운타운에 처음 갔을 때였다. 당시에 다운타운에서 받은 인상은 그리 밝지 않았다. 몇몇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삭막해보였고, 몇 안되는 고층빌딩과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빈 건물들이 그 사이에 서있는 나에게 갈 곳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전체를 보았을 때 그랬다. 그러나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은 전혀 전체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순간에 담긴 장면이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이번에 sns를 삭제하게 한 계기는 다른 곳에  또 있었다. follow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유저의 고백이 그것이다. 짧은 글들을 손글씨로 적어 올리는 사람이었는데 정확히 직업이 무엇이고 왜 그런 글들을 적는지는 잘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instagram 계정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글을 올렸고 그 사람을 follow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때문에 자신의 결정에 대해 재고해보았는지, 그 일이 있은 뒤 다시 다른 글을 포스팅했다. 생각을 나누고 공감을 얻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었지만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뒤로 자기 자신을 잃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정확히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 글을 읽자마자 나의 글과 사진 그리고 그것을 통해 했던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과연 그 모든 것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도달했다. 아마도 글을 창조하는 행위가 가지는 순수함에, 모든 이들이 보고 빠르게 반응하는 어떤 공간에 글을 올린다는 행위가 검은 잉크를 하나 떨어뜨린게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었던게 아닐까. 혼자 추측해보았다.
글을 보고 떠올랐던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을 하게 되었을 때, 망설임없이 어플을 삭제했다. 더 긴 시간의 틀에서 보자면 이것 역시도 길고 길었던 망설임의 끝에 했던 행동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혼자만의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과 글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게 뭘까. 정확히 말하고 싶은게 있기는 한걸까. 찍어온 사진들과 써내려온 길고 짧은 글들에 순수한 나는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그럼 순수란 뭘까.
모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쩌면 순수이지 않을까 결론을 지어보려다가 문득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답을 한다고 해서 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완성될 수 없으니까. 다만 조금 더 많은 색깔을 낼 수 있게 되고, 더 깊은 곳까지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뿐이니까. 누군가의 질문(그게 혹시 내가 되더라도)에 답을 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걷고 있는 이 길을 충실히 걸어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결국 instagram을 지운 것은 회의감 때문이 아니라 나를 더 분명하게 만나기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순간의 표현과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즐겁고 짜릿하다. 때로는 예상보다 못한 반응에 실망하기도 하고 그 반대일 경우에는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는 그 모든 경험은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다. 그 재미를 느끼기 이전에 솔직한 나를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그것이 생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더라도. 전혀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작은 발걸음이더라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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