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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Mar 31. 2016

글2 (Art City)

벤쿠버행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니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 나중에 해야지 생각만 하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 중 첫번째 미션은 art city! 홈페이지에 들러보니 이번주 수업은 스텐실 프린팅이었다. 참가비는 없었고 따로 신청하는 절차도 없는 듯 했다. 정확히 읽어보지 않아서 혹시나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art city는 다운타운에 있다. 골든보이가 서있는 마니토바 주의사당을 지나 브로드웨이를 따라 쭈욱 들어가면 자유분방한 간판과 함께 초록색 건물이 등장한다. 막 도착했을 때 안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분명히 세시부터 오픈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왜 이렇게 다 어린 애들 뿐일까. 또 걱정을 한 가득 안고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 순간 무슨 질문을 던져야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고 다행히 나를 맞아준 분은 수업이 30분 뒤에 시작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 분은 나중에 수업전체를 설명하고 도와주던 에디 선생님이었다. 
art city까지 가는 길에 잠깐 스쳤던 골목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걱정만 많구나 생각하면서. 또 어느 샌가 걸음이 빨라진 나를 진정시키면서. 하나도 똑같은 집이 없는 캐나다의 위니펙의 다운타운의 어느 골목을 걸었다. 문득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커다란 하늘 아래 언제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알록달록 예쁜 집에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러나 이내 마음을 돌렸다. 좋은 것을 가진다고 해서 그 크기만큼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니니까. 내가 그들과 같지 않다고 해서 주어진 생에 덜 감사하지는 않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돌아온 art city에는 처음 도착했을 때 마주쳤던 아이들과 엄마가 있었다. 다코타 패닝을 닮은 여자아이가 나에게 이름을 적고 들어와야한다고 가르쳐주었다. 처음엔 나한테 하는 말인 줄 모르고 시선을 다른데 두고 멍하니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 사실 그렇게 어린 애가 무슨 말을 나에게 하리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리다보니 몇 가족이 더 들어왔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에디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프린팅 하고 싶은 그림을 먼저 그렸다. 모든게 여유있었다. 빨리 그려야한다는 생각에 조급했던 맘이 창피할만큼 그랬다. 누군가를 기다려준다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냥 모두가 그림그린다는 것에 푹 빠져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것을 티셔츠에 남겨가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나만의 위니펙 상징을 만들면 한국에 돌아가서도 기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위니펙 여기저기에 심어져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그 나무의 진짜 이름은 모른다)를 중심으로 위니펙 방문 기념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는 빨간 용지에 그림을 대고 칼로 파내는 작업을 했다. 정확히 나무 세그루와 위니펙 글자를 구분하고 싶었는데 계산이 안맞아서 중간의 구멍들은 다 잃고 말았다. 다시 할까 하다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그대로 두었다.
시작한지 2시간이 넘어가고 나니 나 혼자 슬슬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니 이러다가는 한 밤중에 집에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 티셔츠에 프린팅하는 틀은 하나 뿐이고 모두들 여유롭게 대화하며 즐기느라 빨리 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이 모든 진행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때마침 간식타임도 있었다. 간식이 맛있어서 내 조급함도 잠시 미뤄두었다. 나는 정말 한국인이구나. 그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론 아이들이니까 생각할 것이 많지 않아 더 그랬겠지만.
처음에 나에게 말을 걸었던 다코타 패닝은 나무 그림이 찢어져 한참을 angry 상태로 있다가 제일 먼저 티셔츠에 프린팅을 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림은 아주 예뻤다. 이름이 몬타나였는데 이름만큼 예뻤다. 그리고는 나에게 인사하더니 엄마를 따라 일찍 갔다. 나도 이대로는 6시 42분 버스도 놓칠 것 같아서 먼저 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프린팅했다. 다행히 다음 순서에 있던 필리피노 아줌마를 칼로 그림을 파낼 때 도와주어서 더 수월하게 부탁할 수 있었다. 
프린팅은 성공적이었고 다들 멋지다고 칭찬해주어서 괜히 기분이 더 좋았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golden boy도 카메라에 담아오고, 무사히 버스도 탔다. 버스에서 보니 다운타운에는 오래되어 멋진 건물이 많이 있었다. 다음에는 여유있게 건물들을 탐방하러 다시 나와야지, 생각했다. art city도 다른 수업이 진행될 때 또 와야겠다. 그때는 그 순간에 더 오래 빠져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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