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월 5일
갑자기 너무 덥다. 낮에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밤까지 실내온도가 2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건 너무 심하다. 어젯밤엔 그래서 우주가 여러 번 뒤척이더니 결국 2시쯤 깨버렸다. 창문을 열고도 한참 동안 온도가 잡히지 않아서 우주가 다시 잠에 들었다가 깨고 또다시 들었다가 깨고 그렇게 두 시간을 씨름했다. 어느 정도 선선한 기운이 감돌자 그때서야 푹 자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생각한다. 작년에도 이랬나? 원래 이런 건가? 이게 바로 이상기후인가? 우리의 앞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제의 매운 밤을 기억하며 오늘은 초저녁부터 서방구와 온도 맞추기에 집중했다. 한 번 씩 창문을 활짝 열어 열기를 빼주고 다시 닫고. 그러면 좀 될 줄 알았더니 닫자마자 기온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더위를 어쩌지 못하고 우주는 졸음이 가득한 눈을 하고선 침대에서 뒹굴다가 거실에 나가자고 했다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창문을 열어두고 찬 공기를 있는 대로 방안 가득 채웠다. 바깥공기가 솔솔 들어오니 우주가 그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미동도 않고 푹 잘 자고 있다. 얼른 에어컨 필터를 청소해둬야겠다.
어제 컨디션이 좀 나은 것 같다고, 받아온 약 중에 이부펜만 빼고 먹던 서방구는 아침에 목에 굉장한 통증을 느끼며 열이 올라 오전 내내 잠을 청했다. 아무리 그래도 점점 낫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열이 오르니 나도 잠시 두려웠다. 수시로 방에 들어가 이마에 손을 대보고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땀을 쭉 빼고 열도 내리고 컨디션도 많이 돌아와서 오후에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이부펜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나도 잔기침이 남아서 내일은 약을 새로 더 받아와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받아온 약을 꼬박꼬박 끝까지 챙겨 먹어본 적은 처음이다.
아기들은 크게 아프고 나면 잠을 몰아서 잔다고 한다. 우주도 어제오늘 낮잠을 신나게 잤다.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한결 더 좋아진 표정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엊그제 까지는 짜증이 많았는데 이제 그런 게 없어진 걸 보니 몸이 다 회복된 듯하다. 밖에 나가자는 요청도 없었다. 격리 생활에 우주도 적응한 걸까.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아빠가 계속 집에 있으니 더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필요하면 다가와서 손을 잡거나 옷소매 끝을 잡아끌고는 했는데, 오늘은 '아빠! 엄마!' 하며 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나는 그래도 종종 들었는데 아빠를 필요해서 부르는 건 오늘 처음이라 감격스러웠다. 우주가 나를 부르는 걸 보는 것도 좋지만 아빠 부르는 소리는 듣는 건 또 차원이 다른 기쁨이다. 우주와 아빠가 맺는 관계를 두 귀로 듣게 되는 것이니까.
오늘의 마무리도 부흥회로 맺었다. 우주와 놀며 드리느라 정신없는 예배였지만 마지막 기도시간에는 짧은 시간 동안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게 해 달라고. 나도 서방구도 우주도, 우리 가족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우주를 재우고 나와 식탁에 앉아서 서방구와 매년 고난주간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절기를 지키면 좋겠다고 이야기 나눴다. 우리는 둘 다 모태신앙이라 절기라고 하면 빠삭한 사람들이다. 절기마다 대번에 교회에서 어떤 메시지와 어떤 행사를 하는지 너무 정확히 알고 있던 사람들. 그래서 우리에게 절기는 너무 식상한 것이었다. 이번 격리를 계기로 살아있는 절기를 지켜보게 되었으니 주입식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담긴 절기로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우리에게는 감사와 회복과 쉼이 있다. '고난'주간에 '고난'이 아니라 감사와 회복과 쉼이라니. 놀라운 은혜다. 구원이란 그런 것이니. 내일도 그 은혜를 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