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월 15일 날씨 기가 맥힘

19개월 8일

by 마이문

어제는 인생 첫 갈비찜 도전에 성공한 날이었는데 우주와 동시에 기절해버려서 일기를 못썼다. 어제저녁 그리고 오늘 아침과 점심으로 갈비찜을 맛있게 먹었다. 요리의 세계에 한 발 더 다가선 기분이다. 재작년 여름의 나는 시부모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 전 날 친구 찬스를 써서 반찬과 매운탕 양념을 해결했었다. 오이 무침과 콩나물 무침을 척척 해내는 친구의 손길에 감탄을 연발했다. 콩나물을 데치다가 언제 뚜껑을 여는지 알고 있는 게 신기했고 불고기와 매운탕 양념을 검색도 하지 않고 때려 맞출 때는 꼭 마술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랬던 내가 갈비찜을 만들다니. 심지어 맛있다니! 이제 어디 가도 음식 못해서 답답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은 아침을 챙겨 먹고 우주와 마트에 있는 키즈카페에 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차 대신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우주도 햇살을 맞으니 행복한 듯 보였다. 금요일 아침의 한산한 키즈카페에서 전세 낸 것처럼 놀았다. 마지막으로 갔던 게 작년 겨울이니까 벌써 6개월쯤 지난 것 같다. 자란 만큼 더 알차게 놀았다. 집 보다 공간도 크고 놀거리도 많으니 어쩌다 한 번씩 놀러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음을 이기며 집에 가자는 말에 세차게 고개를 흔들더니 1시간 반을 놀다가 진짜 못 버티겠는지 내 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나가자고 하니까 순순히 유모차에 타서, 오는 길에는 거의 잠들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마트 입구에는 늘 모자를 파는 매대가 있다. 사람들이 매대 앞에 서있는 걸 본 적이 드문데, 오늘은 계속 붐비고 있었다. 동생이랑 빵집 하는 동안 숨 막히는 기다림의 시간을 많이 겪어본지라 그 매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이상하게 짠했다. 그렇다고 내가 모자를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집을 나서며 강한 봄볕에 그 매대가 생각났다. 맘에 드는 모자가 있으면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장님이 분주한 모습을 오늘 처음 보았다. 그 광경을 보고 괜히 내 마음이 편해졌다. 우주랑 집에 가면서 나도 모자를 하나 샀다. 머리 통이 큰 편이라 웬만한 모자는 꽉껴서 안 어울리는데 마침 내 머리도 무난히 감싸주는 버킷햇을 만났다. 집에 와서 머리를 높이 묶고 써봤는데도 쏙 잘 들어갔다. 나이스. 기대하지 않은 어느 날 나와 마음이 딱 맞는 물건을 만나는 순간은 늘 좋다.


서방구의 하루는 양약과 한약의 릴레이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엄마가 보내준 한약 두 종류를 시간 맞춰 먹다 보니 하루 종일 약만 먹인 것 같다. 오늘이 서방구의 격리 마지막 날인데. 이렇게 증세가 안 떨어지는 걸 보니 코로나가 보통 놈은 아닌가 보다. 내일 캠핑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런 몸 상태로 갔다가는 큰일 나지 싶어서 취소하자고 회유해봤는데 꼭 가야겠다고 한다. 생각날 때마다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6월 학회 때문에 논문 초록을 월요일까지 써야 한다고 걱정하더니 캠핑 가려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다 썼다고 한다. 그러니 자긴 가야 한다고. 그만 물어보라더니 결국 짐을 다 챙겨 내일의 준비를 마치고서야 잠이 들었다.


고난주간 부흥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의 고뇌에 동참하라는 것.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게 늘 모호했는데 고뇌에 동참한다는 표현을 보자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님의 생애를 그린 4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부분에서 고뇌하셨는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종교적인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셨다. 낮고 천하고 아프고 상한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려 하셨다. 예수님이 고뇌하신 것에 나도 참여하면 된다. 나도 고민하고 실천하면 된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동산에서 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올라가 기도하실 때 졸지 않고 곁에서 함께 기도하는 제자가 되어드리면 된다.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을 아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사무치게 감사한 밤이다. 예수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아서 나도 계속 더 많이 사랑을 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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