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월 21일 흐리고 봄바람

19개월 15일

by 마이문

일기를 며칠 동안이나 쓰지 못했다. 피곤하고 힘들고 지친 나날들이었다.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봐야 할지, 격리 기간 동안 집안일과 병간호와 육아 쳇바퀴를 도느라 정신이 없다가 이제야 긴장이 풀려 그런 거라고 봐야 할지, 그저 우주의 떼와 자기주장이 늘어서 그만큼 더 버거워졌다고 해야 할지, 월급날이 코 앞이라 돈이 없는 게 스트레스여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들 뿐이다. 멍하고 졸리고 참을성이 없어졌다. 우주가 작은 몸짓으로 웃음을 줄 때 말고는 그 무엇도 즐겁지가 않다. 자주 울렁이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스타를 켜서 정신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시간만 나면 그러고 있다.


어제는 그래서 서방구가 돌아오자마자 폭발해버렸다. 우주를 맡겨두고 침대에 누워 그저 터지는 울음을 나오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울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달랠 겨를도 없이 계속 흘렀다. 밤에는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자고 나면 다시 우주에게 무한정 끌려다니는 육아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그저 멍도 때리고 묵상도 하고 캠핑 가서 찍은 사진들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동생이 격리 해제되자마자 한 달음에 우리 집으로 달려와주었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우주가 보고 싶다고 대전에서 올라왔다. 서방구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티켓을 끊어줘서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잠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해서 놀랐다. 서울 갈만 한데? 차 끌고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아쿠아리움에 먼저 갔다. 우주는 크게 좋아하지도 싫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랬나 싶다. 그래도 좋아하는 이모가 있으니 잘 따라다녔다. 아쿠아리움은 당분간 안 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커서 물고기에 관심 갖는 어린이가 된다면 그때쯤에나 가봐야지.


롯데타워 바로 옆에 위치한 빌딩 지하에는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가 있다. 동생이 전에 친구들과 가보고는 나를 꼭 데려가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오늘 드디어 가게 됐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는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다고 했다. 모든 것이 다행인 날이다. 좋아하는 해쉬브라운을 원 없이 먹고 오믈렛도 배 터지게 먹고 거기에 팬케이크 세 장 까지 해치웠다. 우주도 오렌지 주스와 우유 그리고 팬케이크와 까까를 넘나들며 배불리 먹었다. 동생의 예비신랑, 나의 예비 제부가 재밌게 놀다 오라고 챙겨준 용돈으로 모든 것을 누렸다. 거기에다 동생은 나에게 팬케이크 하우스 굿즈인 컵까지 사줬다. 집에 오면 뭐든 간에 포장부터 뜯고 보는 스타일인데 그 컵은 지금도 상자 한쪽도 열어보지 않고 식탁에 전시되어 있다. 너무 소중해.


석촌호수를 짧게 거닐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우주는 오고 가는 길에 푹 잤고, 덕분에 맘 편히 운전할 수 있었다. 동생이랑 차에서 나누는 대화가 좋다. 평소보다 먼 길을 다녀오니 더 여유 있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동생은 우주를 마크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해버렸다. 평소 같으면 하지 말라고 말렸을 텐데 오늘은 고맙게 받았다.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동생을 보내셨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서방구에게서 위로가 오지 않으니 어디에서 위로를 얻어야 하나, 사람에게 위로를 바란다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나는 동생에게 오늘 위로를 받았다.


우주는 좋아하는 이모가 와 있으니 너무 즐거웠는지 졸린데도 텐션이 떨어지지 않아서 결국 더 늦게 잠이 들었다. 자다 깨지 않고 푹 잤으면 좋겠다. 내일의 나는 조금 더 힘이 났으면 좋겠다. 금요일이 온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두 번째 캠핑을 떠난다. 월요일에는 대전으로 간다. 조금만 더 버티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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