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월 16일
올해 두 번째 캠핑에 왔다. 비가 온다고 하던 주말 예보는 다행히 구름이 조금 있는 맑은 날씨로 바뀌었다. 아침에는 미세먼지가 나쁨 수준이라고 했는데 오후에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좋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 텐트가 너무 낮아 불편했는데 회사 복지몰에 새로 출시된 리빙쉘 텐트가 입고 되어 서방구는 보자마자 질렀고, 오늘은 새로 산 텐트를 처음 펼쳐보는 날이었다. 허리를 90도로 굽혀야만 했던 우리의 지난주 캠핑을 떠올리면 오늘은 완전히 궁궐에 온 것만 같은 하루를 보냈다. 서방구는 연신 너무 좋다고 했다. 바람도 좋고 날씨도 좋고 텐트도 좋고. 텐트 피칭할 때 햇살이 너무 뜨거웠던 것 말고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나는 다른 방면으로 만족했던 하루였다. 지난주에는 너무 귀찮아서 우주의 식사를 우리 밀키트에서 나눠주는 걸로 해결해보려 했었다. 근데 그게 여러모로 불편하고 어려웠다. 밀키트는 조리를 해야만 하는데 우주가 이미 배고파진 상태에서 조리하기 시작하면 너무 늦어버려 우주는 과자를 미친 듯이 입에 넣기 일쑤였다. 같이 먹으려고 골라온 된장찌개에는 된장에 이미 매운 소스가 첨가되어 두부만 대충 건져 올려 주기도 했다. 그냥 이틀 정도야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도 되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내내 맘이 불편했다. 오늘은 그래서 아침부터 4끼 식단을 모두 요리해서 반찬통에 담아왔다. 캠핑장에 오는 길에 차가 막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자신 있게 반찬통 하나와 밥을 꺼내 우주를 배불리 먹였다. 낮잠을 자고 깬 우주가 배고픔의 신호를 보낼 때도 역시 만들어온 돼지고기 김치볶음을 얼른 데워냈다. 속이 후련했다. 배고픔에 과자나 우유를 찾는 일이 없었다.
오늘의 여정이 피곤한 탓인지, 낯선 환경에 예민한 촉이 곤두세워져서 그런지 우주는 내내 나에게 안겨 있었다. 컨디션을 살피느라 저녁에는 내내 에너지를 거기에 다 쓴 것 같다. 다행히 여기에는 아기들을 위한 모래놀이터와 실내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어서 한 40분 정도 우주와 그곳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저녁 8시로 이용시간이 마감되어 더 놀지 못한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내일 아침을 먹자마자 다시 놀러 가자고 해야지. 모래놀이도 들고 가야겠다. 우주는 오래 뒤척이다 열 시쯤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지는 데도 오래 걸린 듯하다. 우리는 잠깐이나마 맥주와 과자를 먹으며 자유시간을 보내다가 졸음이 쏟아져 이너텐트로 들어왔다. 아늑하고 따뜻하다. 히터도 침낭도 모두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캠핑의 가장 큰 매력은 오후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밤으로, 또 밤에서 아침으로 해가 지고 뜨는 광경을 온몸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땅거미가 지면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조명을 준비하고 이내 불 냄새가 캠핑장에 가득해진다. 우주가 있어서 아직 화로를 쓰지 않는 우리도 충분히 그 냄새에 취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스타일로 꾸민 밤의 텐트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완전히 밤이 찾아오면 작은 불빛에 의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졸리면 따뜻한 침낭 밑으로 몸을 숨겨본다. 이렇게 며칠 지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으며 잠이 든다.
햇빛이 텐트를 감싸기 시작하는 내일 아침의 기운도 기대가 된다. 우주에 대한 걱정은 좀 덜어내고 마음을 편히 먹는 하루를 만들어보길. 재밌었다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