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2년 4월 24일 흐리고 뜨거운

19개월 17일

by 마이문

몸도 맘도 정상 궤도에 올라 평안한 밤이다.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맞이한 우울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았었는데. 엊그제 동생이 다녀가고 나서 긴장까지 풀려서는 말도 잘 안 나오는 지경까지 갔다가 서방구를 곁에 앉혀두고 펑펑 울며 내가 가진 고단함에 대해 쏟아낸 후에야 맘이 풀렸다. 어제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약국에서 피로회복제를 사 먹었더니 몸에 기력이 도는 것을 느꼈다. 몇 주간 잃었던 내 몸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집에 돌아와 낮잠도 챙겨 잤더니 훨씬 더 좋아졌다. 그러고 나니 어제오늘 캠핑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저녁을 보냈다.


지난주 캠핑도 양평이었고 이번에도 양평으로 다녀왔다. 각각 다른 캠핑장이지만 어쨌든 양평으로 들어가는 길 까지는 같은데, 화성-광주 고속도로가 뚫린 줄 모르고 순정 내비만 믿고 갔다가 지난주에는 길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네이버 지도 덕분에 타게 된 새로운 고속도로 풍경이 생각난다. 차가 밀리지 않으니 수월했고 새로 생긴 길이라 도로 상태가 깨끗하고 편안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4~5월에만 볼 수 있는 산의 색도 마음껏 감상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서방구와 내내 길이 너무 좋다고 얘기했다. 앞으로도 양평은 부담 없이 다닐 수 있겠다고 했다.


뻥 뚫린 고속도로 덕분에 마무리가 좋으니 1박 2일의 기억도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 같다. 캠핑장에서 체크아웃하는 날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짐 정리와 텐트 철수를 둘이 하면 수월할 텐데 나는 우주를 전담 마크해야 해서 모든 일은 다 서방구 몫이다. 4월의 햇살이 이렇게 뜨거웠나 마음속에 계속되는 의문을 품은 채 우주와 놀이터에서, 자동차에서, 자갈밭에서 텐트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양 옆 사이트가 모두 철수할 때까지도 우리는 한참 더 정리할게 남아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 둘이 텐트 접는 일을 돕는 걸 부러운 마음 감춰가며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우리도 해가 거듭할수록, 우주가 자라날수록 조금씩 더 수월해지겠지. 그리고는 이렇게 까지 고생하는데 굳이 이 작은 아기를 데리고 캠핑에 왜 오는 걸까 생각했다.


그 생각의 답을 찾지는 못했다. 우주를 재우고 야식으로 간짬뽕을 먹으며 캠핑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나대로 우주와 고된 시간을 보내듯 서방구는 캠핑 자체에 필요한 모든 일을 맡느라 고되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 왜 그래도 좋을까 서로 물었다. 서방구는 삶을 돌아보게 되어서 좋다고 말했다. 캠핑은 다른 유형의 여행과는 다르게 먹고 자는 일을 집에서 하는 것보다 더 귀찮은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오히려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면 편리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좋은 건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직 두 번 밖에 가보지 못해서 더 많이 다녀야 조금씩 빈칸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오후에 마신 커피 덕분에, 귓속이 간지러워 면봉을 찾으러 서재에 들어온 덕분에, 귀찮아서 쓰지 말까 생각했던 일기를 남길 수 있었다. 내일은 엄마 집에 간다. 오랜만이다. 거기에서 보내게 될 일주일이 기대된다. 우주도 재밌는 한 주가 되겠지. 내일 운전하려면 얼른 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2년 4월 23일 공기 맑은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