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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4월 25일 딱 비오기 전날의 날씨

19개월 18일

by 마이문

엄마 집에 우주와 무사히 왔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우주를 기다리며 일기를 한 바닥 썼다가 우주가 자러 들어와서 토닥여주다 나도 같이 기절했었다. 잠든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우주가 갑자기 서럽게 울며 일어났다. 아기가 울면 얼른 상황 파악을 해야만 한다. 오늘 여정이 피곤했으니 그저 놀라서 깬 걸까. 그래서 안아줬더니 더 발버둥을 친다.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다리가 아픈 건가. 다리를 주물러주려 손을 댔더니 싫다고 더 운다. 물이 필요한지 묻는 말에는 더 서럽게 운다. 얼른 다시 눕혀 가슴을 토닥거리며 배 마사지를 해주었다. 울음이 잦아든다. 배가 아팠구나. 응가를 하지 못한 날이다. 밖에서 이것저것 많이 먹기도 했다. 따뜻한 손으로 한참 배를 덮고 있으니 불룩했던 배가 쏙 들어갔다. 곤히 잠들었다.


잠이 다 깨버려 다시 일기를 쓰려고 폰을 집어 들었는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문장이 적혀있어 모두 지워버렸다. 일기를 매일 쓰기 시작한 지 이제 꼬박 세 달이 다 되어간다. 일기를 매일, 누군가 볼 수 있는 곳에 남기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해서 시작했다. 딱 1년은 아무 생각 말고, 룰도 바꾸지 말고 그저 하기로 한 대로 실행하기로 했는데. 벌써 4분의 1을 채워가고 있다. 아직은 이 행위가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하루를 꼭꼭 씹어 넘기게 됐다. 일기를 쓰려면 다 기억해야 하니까, 순간순간을 지나갈 때마다 머리에 더 남겨보려 애쓴다. 조금은 풍성한 하루를 보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계정을 없애지는 않았고 폰에서 어플을 삭제했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깔아지는 시즌이 찾아올 때마다 했던 의식 같은 행동인데, 이번에는 잠시가 아니라 영영 그렇게 지우는 건 어떨까 싶다. 인스타그램은 다른 SNS와 다르게 중독으로 가는 길이 가파르다. 나의 경우에 그렇다. 스크롤만 내리면 끝도 없이 제공되는 새로운 이슈와 재미들, 지인의 소식들이 나의 뇌를 자극한다. 너무 짧은 텀으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슬펐다가 웃겼다가 안타까웠다가 부러웠다가. 이내 나도 내 소식을 올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피드를 올리는 일도 고민이 많아졌다. 어쨌든 편집된 일상이 올라가니 같은 포스팅을 보고도 사람들이 주는 피드백이 너무 달라 결국에 내가 보여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 조차도 모르게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피드백이 맘에 들지 않으면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인스타그램을 지우는 것도 결국은 다 글을 잘 써보기 위한 시도다. 글을 잘 쓴다는 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 발을 들이지 못한 영역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그리고 깊이 사유하는 것. 깊은 사유를 방해하는 인스타그램의 짧고 짧은 자극을 끊어내니 며칠 안되었어도 머리가 금세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무엇 때문에 그간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한 걸까. 아무튼 가벼워져서 좋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비가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4월 말엔 비가 내려야 한다. 이 세상에 비를 필요로 하는 모든 존재들이 비로소 5월을 맞이할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다. 오매불망 증손주를 기다리시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몇 달만에 뵙는다. 부디 우주가 젠틀하게 머물러 주길 바라며. 오늘도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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