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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4월 26일 시원한 비

19개월 19일

by 마이문

기적이 일어났다. 우주가 8시 40분에 잠들었다. 갑자기 나의 밤이 두 시간이나 일찍 찾아왔다.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어제 못한 월요 묵상을 했다. 엄마가 늦게 귀가한 후에 동생이랑 셋이 모여 오랜만에 시시콜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다. 끝날 줄 모르던 수다는 동생이 가르쳐 준 운동을 배우며 마무리되었다. 우주는 어쩌다 이렇게 일찍 잠들게 된 걸까?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만족스러웠던 하루였나 예상해본다.


아침에는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매번 짧게 머무르다 가는 것이 내심 서운하신 듯해서 오늘은 작정하고 일찍부터 갔다. 다행히 우주가 거기에서 점심과 낮잠과 응가와 간식까지 모든 것을 해결했고, 그래서 맘 놓고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기특한 녀석. 잠을 푹 자준 덕에 할머니의 이야기도 맘 놓고 편히 들었다. 할머니는 걱정을 사서 하신다. 여자는 살림을 똑 부러지게 해야 하고 남편의 끼니를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지 않는 사촌동생들의 걱정을 한 보따리 듣고, 아들들에게 아침을 차려주지 않는 며느리들의 욕을 또 한 보따리 듣고, 내가 서방구의 아침을 차려주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을 여러 차례 듣고, 피날레로 할아버지의 못난 일화를 듣다가 우주가 잠에서 깨어 끝이 났다.


전에는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욕하는 할머니에게 욕하지 마시라고 호소하고 그랬었다. 걱정도 욕도 듣기가 너무 불편했다. 당시에는 왜 불편한지 몰랐다. 할머니가 좋은데 걱정과 욕은 싫으니 좋음과 싫음의 충돌을 느끼기가 거북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그런 나쁜 것들을 품고 사시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은 듣는 중에 불편한 마음이 없었다. 대꾸하고 싶은 충동도 일지 않았다. 걱정과 욕을 아이덴티티로 가진 하나의 캐릭터 같았다. 그냥 그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할머니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모든 말은 곧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이면서도 전부는 아니다. 20년 좀 넘게 살았을 때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이리저리 뜯어보고 할머니를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30년 좀 넘게 살아보니 다 시건방진 시도였던 것 같다. 엄마가 되고는 옳고 좋고 바른 선택만 하면서 살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은 너무 연약하고 인생은 고달프고 주어진 삶은 무겁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말에 걱정과 욕이 있다고 해서 할머니 인생 전체가 그랬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신다. 할아버지를 위해 매일 세 끼 식사를 성실하게도 차려내신다. 허리를 펴기도 힘드시면서 내가 가면 꼭 우렁된장찌개와 조기를 내어주시고 설거지도 못하게 하신다. 할머니는 이렇게 '좋은' 면도 많이 가지고 계시다.


할머니를 이해하고 엄마를 이해하는, 아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나 자신을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주를 향한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미숙한 나를 직접 인정하기는 어려우니 엄마와 할머니를 이해함으로 은연중에 나에게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거다. 간접 위로인가. 그래도 효과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요 근래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무너졌던 마음이 이제 다 회복되었다. 우주의 성장 분기마다 나의 부족함은 드러나고 또 다시 무너질테지만 회복의 기억이 있으니 조금씩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갈 때마다 주름이 깊어지고 눈동자의 색이 옅어지고 힘이 점점 떨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픔과 싸워야 한다. 가까이 살았으면 더 자주 뵈었을 텐데. 아빠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아직 건강하신데 무슨 그런 걱정을 하나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도 같은 마음이 든다. 오늘은 펑펑 울고 싶은 슬픔이 차올랐지만 무사히 삼키며 집으로 돌아왔다. 챙겨주신 명란젓과 조기와 함께.


우주를 유모차에 태워 동생의 빵집까지 걸어갔다. 서방구를 따라 동탄에 올라가기 전에 1년 동안 내내 걸었던 길이다. 우주와 걸을 때마다 내가 동탄에 살다 잠시 내려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쭉 여기에서 지내온 것만 같다. 마음의 거리가 아직도 이 동네에 가까운가 보다. 다시 집까지 걷기가 힘들어서 퇴근하는 아빠에게 픽업을 부탁했다. 교회에 잠시 볼일이 있다는 아빠를 기다리다가 조명 시스템을 봐주러 오신 작은 아빠도 뵙고 지나가던 교회 오빠도 오랜만에 만나고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친구와도 잠깐 조우했다. 역시 교회는 만남의 장이다.


내일은 별다른 일정이 없다. 우주도 나도 피곤해서 좀 쉬어야지. 집 앞 놀이터에서 모래도 좀 만지고 고기 사러 정육점에 다녀와야겠다. 우주가 깨지도 않고 푹 잔다. 나도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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