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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4월 27일 송화가루가 온 세상을 덮어

19개월 20일

by 마이문

우주가 한 번도 깨지 않고 11시간을 내리 잤다. 개운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엄마랑 셋이 정육점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방앗간에 들러 감자와 고구마도 샀다. 방앗간 밖에서 우주랑 서서 기다리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수입 참기름을 사러 오셨다. 마침 다 떨어져서 빈손으로 돌아가시려다 사장님에게 일요일에 사러 올 수 있는지 물으셨고, 사장님은 그날 쉬는 날이라 안된다고 하셨다. 웃으시며 혹시 내가 전화하면 잠깐 나올 수 있냐고 하시니 사장님이 아침 일찍 시골에 가야 해서 그럴 수 없다고 답하셨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휴무날 잠깐 나와달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지만 내가 들은 그 대화에는 용납이 있었다. 스치듯 지나간 짧은 대화가 그래서 정겨웠다. 그냥 혹시나 싶어 되는지 묻고 안된다고 하니 멋쩍게 웃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시는 모습에, 말도 안 되는 질문인데도 찬찬히 답해주시는 모습에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도 이 길 위에는 따뜻함이 존재한다.


오후에는 엄마가 강의 나간 사회복지관에 빵을 배달하러 갔었다. 복지관은 외할머니(이 호칭을 대체할 표준어가 어서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가 생전에 사시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고 했다. 엄마가 위치를 설명해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왼쪽에는 학교가 있고 오른쪽에는 상가가 들어선 단지 입구에 진입하자 할머니 댁에 가던 그 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내가 고3이었을 때 돌아가셨다. 한참 아프시던 해에는 학교에 틀어박혀 있느라 찾아뵙지 못했으니 댁에 갔던 기억은 이제 15년이나 묵어버렸다. 초입을 지나자 할머니가 사시던 동이 보이고 그 앞에 놀이터도 보였다. 엄마에게 빵을 전달하고 우주와 놀이터에서 잠시 놀았다. 엄마는 여기로 일하러 올 때마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겠구나.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는데 또 잊었다. 엄마의 그리움 앞에서는 충분히 따뜻하지 못했던 딸이라 오늘의 기억만큼은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 내일 아침에 이야기해줘야지.


엄마가 옷을 사준다고 해서 자주 가는 옷가게에 들렀다. 대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 앞에 매장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옷은 거의 거기에서만 샀다. 당연히 주인 언니랑도 친하게 지냈다. 우주를 낳고서는 우주를 데려가면 여유롭게 앉아 대화하고 옷을 고르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 이제는 옷을 사도 입을 시간도 장소도 없어서 선뜻 나서 지지 않아 오랫동안 언니를 보러 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엄마가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못 갔을 거다. 역시나 내가 입을 만한 옷이 별로 없어서 티셔츠와 바지 하나씩만 골랐다. 작년에 샀던 흰 바지와 비슷한 바지를 고르니 언니가 대번에 알아보고는 왜 또 똑같은 걸 사냐고 물었다. 애석하게도 그 바지는 배가 꽉 끼게 되어 동생에게 넘겼다. 왜 자꾸 배와 엉덩이는 점점 커지는 걸까. 가뜩이나 꼴이 사나운데 점점 영락없는 아줌마 몸이 되어가니 가끔은 서글프다.


어제 잠시 만나 인사한 친구가 오늘 저녁 시간이 괜찮냐고 물었다. 마침 아빠가 일찍 퇴근했다고 연락이 와서 집에 맡기고 갑작스럽고도 오랜만에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맛있는 등심 카츠를 먹었는데 식당에는 상큼한 20대뿐이어서 친구와 약간 어색한 기분을 느꼈지만 수다 떨다 다 잊어버렸다. 커피를 마시러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가 졸려서 나를 찾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졸리다는데 가야지. 암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왔다. 우주가 방에서 달려 나와 안겼다. 이제껏 내게 보인 반응 중에 최고로 격한 반응이었다. 아쉬움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렇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지.


내가 좀 늦어서 우주가 진짜 자고 싶었던 타이밍을 놓친 듯했다. 잠드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이른 취침시간이었다. 내일은 엄마의 강의가 없는 날이다. 셋이서 잔잔한 하루를 보내려나. 내일도 기어코 외출하겠지. 벌써 목요일이라니. 아쉬운 한 주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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