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개월 22일 (600일)
우주가 태어난 지 600일이 되었다. 근사한 저녁식사를 일주일 내내 꿈꾸었지만 어젯밤 우주의 대성통곡 소동으로 그냥 여느 때처럼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우주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밤 12시경에 갑자기 몸을 비틀며 눈도 못 뜨고 서럽게 울었다. 안아줘도, 배를 문질러줘도, 다리를 주물러도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세게 울었다. 한참 이런저런 방법을 써보다가 통하지 않아서 이불로 감싼 채로 집 밖에 나갔다. 울음을 그치고 진정이 되었다. 답답했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 집에 가고 싶냐고 묻자 또 그렇다고 대답했다. 같이 그네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 다시 집에 들어가니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대전에 내려와 새로운 것도 많이 보고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났던 게 피곤했나 우리 모두 그렇게 예상할 뿐이었다. 우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시키고자 외식을 포기한 것이다. 다행히 오늘은 아직까지 잘 자고 있다.
우주와 6일 차이가 나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아침 일찍 만나서 놀다가 점심을 먹이고 같은 시간에 아기들을 재워보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성공하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세상에나, 점심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들이 졸려하길래 다 같이 침대에 누웠더니 거의 동시에 잠에 빠졌다. 성공의 환호는 눈빛 교환으로 대신하고 방에서 나와 두 시간의 수다를 누렸다. 공감하지 못하는 신랑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 아기들의 발달 상황에 관한 이야기,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육아 상식에 대한 이야기, 캠핑 장비 검색 등 쉴 새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주는 침대가 편안했는지 세 시간을 깨지도 않고 푹 잤다. 일어나서 간식을 먹이고 며칠 전에 600일을 지낸 시온이를 위해 장식한 풍선 데코 앞에서 아기들 둘이 함께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오늘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우주가 만나본 동갑인 친구는 두 명이 전부지만 그간의 데이터를 미루어보면 어딜 가나 빼앗기고 당하기 쉬울 것 같다. 일단 장난감 하나로 쟁탈전이 벌어지면 그게 친구 꺼든 본인 꺼든 빼앗긴 후에 서러움의 입모양을 하고 울며 나에게 달려온다. 오늘은 친구 집으로 갔으니 얼마나 더 주눅이 들었겠나. 하루 종일 빼앗기고 밀침 당하다가 나중에는 친구가 다가오면 일단 포기하고 자리를 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매번 똑같이 생각하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줘야 하나 잘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빼앗는 아기를 바라보는 내 친구도 마찬가지라 둘 다 내내 어르고 달래는데 시간을 다 썼다. 나도 어릴 때 꼭 우주 같았다. 동네 친구들에게 맞고 빼앗기고 먼저 앞장서기보다는 졸졸 쫓아다니는 편이었다. 위협 앞에서는 맞대응하지 못하고 피하고 돌아서고 울었다. 그래도 이만큼 잘 컸다. 물론 성장기 내내 소심함은 해결 못한 숙제처럼 나를 따라다니긴 했으나 극복의 기쁨도 맛보고 성장의 희열도 느꼈다. 지금은 우주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반응 말고는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집에 돌아와 양장피와 팔보채, 짜장을 맛있게 먹고 동생이 만든 고구마 케이크에 귀여운 초 여섯 개를 꽂고 다 같이 600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우주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환하게 웃었다. 우주와 함께 울고 웃은 600일이었다. 또 앞으로 600일을 더 채우고 난 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마음과 여러모로 크게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우주, 축하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