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 12일
양치하다 갑자기 동생 결혼식에 뭘 입어야 하나 고민이 되어서 가지고 있는 한복을 입어도 괜찮을까 싶어 우주 돌사진을 찾다가 그맘때 우주의 귀여움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일기를 얼른 쓰고 자야 하는데 사진 찾다가 두 시가 됐다. 빨리 쓰자.
우주가 일곱 시쯤 잠이 깰 듯 말듯한 상태로 계속 울었다. 잠이 들다가 실패해서 울고 또 잠에 들었다가 깨서 울고. 우리는 그냥 우주를 깨워서 짐을 얼른 싸고 체크아웃해버렸다. 로비에 갔더니 직원이 다른 확인도 없이 그냥 카드만 받고는 됐다며 가도 좋다고 했다. 모텔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는 기분이 들었다. 호텔 1층에 있는 빵집이 평도 좋고 커피도 일리 원두라서 오픈 시간이 5분 남았길래 기다렸다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집으로 출발했다. 안녕, 소래포구.
돌아오는 길에 나무 위키에 소래포구를 검색했다. 바가지로 유명한 수도권의 관광지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인천 사람들은 가지 않는다고 했다. 17년도에 큰 화재가 있었고, 무허가로 장사하던 상인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튼 다녀온 여행지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건 아쉬워서 검색이라도 해봤다. 소래포구에서 한 일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이다.
집에 돌아와 예배도 드리고 점심으로 찜닭도 했다. 그 사이 우주는 이틀간 만나지 못한 응가를 드디어 만났고 나는 감자를 썰다 또 손을 벴다. 이제 겨우 지난번 상처가 다 아물어 가는데. 정신 차려야지! 다행히 찜닭은 맛있게 됐다. 셋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낮잠을 세 시간이나 때렸다.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저녁은 이케아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우주는 로제 파스타, 나는 언제나 등심 돈가스, 서방구는 김치볶음밥. 그리고 항상 연어 샐러드를 추가한다. 오늘은 사진에 끌려서 얼그레이 케이크도 주문해봤다. 진짜 진짜 맛있었다. 커피랑 케이크까지 깔끔하게 다 먹었다.
우주는 작은 카트를 신나게 끌고 서방구는 우주를 지켰고 나는 소소하게 살 것들을 찾아다녔다. 우주의 커트러리, 돌돌이 리필, 양면테이프는 예정에 있던 목록이었다. 아기 손수건이 처음 출시됐길래 두 세트 담아보고, 거의 다섯 번쯤 눈여겨보기만 했던 수납함이 한 개 남았길래 얼른 챙겼다. 그리고 지난번에 샀는데 엄청 만족스러웠던 여행용 파우치도 하나 더 담았다. 그렇게 오늘도 또 오만 원이다.
우리가 스승으로 여기는 목사님께서 오늘 오랜만에 모교회 강단에 서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 밴드로 예배에 참여했다. 못 뵌 지 몇 달 되었는데 그사이에 살이 많이 오르신 듯했다. 설교는 여전히 마음을 울렸다. 오늘 교회에서 들으신 성도님들께도 목사님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기를.
손가락을 베인 관계로 오늘은 서방구가 우주를 씻기고 내가 분리수거를 맡기로 했다.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쓰레기를 분류하는 게 생각보다 재밌었다. 확실히 우주를 씻기며 씨름하는 것보다는 덜 힘들다. 다음에도 바꿔서 하자고 해야지.
우주를 재우고 서재에서 맥주를 마시며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의뢰받은 일을 정리했다.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아쉬웠던 우리는 며칠 전에 보다 멈춘 최강 야구도 조금 더 봤다. 레전드 선수들이 모여서 다시 야구하는 프로그램인데 너무 짜릿하고 재밌다.
졸음이 밀려온다. 잠이 안 온다던 서방구는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고 우주는 오래 뒤척이더니 이제 폭 잠들었다. 나도 자야지.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다.